수확의 계절에 무소유라
수확의 계절에 무소유라
by 운영자 2017.09.28
눈부신 초가을 아침이다.
요즘은 때가 일러 옛날과는 달리 요맘때만 되어도 들판이 벌써 황금빛으로 물들어있고 이미 수확을 마친 곳도 있다. 봄에 씨를 뿌려 무수한 땀으로 일궈온 것들이 이제 결실로 맺어지는 것이다.
농촌 현실을 내려놓고 황금 들녘을 바라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얼마나 가슴 벅차고 뿌듯한 일인지 모른다.
장석주 시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대추 한 알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수고로움이 깃들이는 것이니 저 들판의 노오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들의 풍요로움에 대해 더 이상 말해 무엇하리오.
하지만 이 풍요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그러기에 피와 땀의 결과물들을 기꺼이 즐겁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책꽂이 한구석에 꽂혀있는 누런 빛의 문고판 책 말이다.
이 책에서 스님은 이야기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우리네 삶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아간다.
대가족이 아님에도 집안에는 수많은 물건이며 잡동사니들로 넘쳐난다.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이사 차량만 채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 길들여져 이제는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은 물질만능 대량소비의 나락에 빠져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행복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요즘 삶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물질에 치여 살아가는 삶 대신 스스로 홀가분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픈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엄청난 의미가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이 생기면 기꺼이 즐겁게 이웃들에게 나누면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니 미니멀리즘은 아마도 일석십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삶 대신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좋은 삶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삶 말이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페이스북 창립자 저커버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단다. ‘이 공동체를 가장 잘 섬기는 것 외에는 해야 할 결정의 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나부터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눈부신 가을날에 무소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깃털처럼 가볍게 저 푸른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
농촌 현실을 내려놓고 황금 들녘을 바라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얼마나 가슴 벅차고 뿌듯한 일인지 모른다.
장석주 시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대추 한 알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수고로움이 깃들이는 것이니 저 들판의 노오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들의 풍요로움에 대해 더 이상 말해 무엇하리오.
하지만 이 풍요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그러기에 피와 땀의 결과물들을 기꺼이 즐겁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책꽂이 한구석에 꽂혀있는 누런 빛의 문고판 책 말이다.
이 책에서 스님은 이야기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우리네 삶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아간다.
대가족이 아님에도 집안에는 수많은 물건이며 잡동사니들로 넘쳐난다.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이사 차량만 채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 길들여져 이제는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은 물질만능 대량소비의 나락에 빠져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행복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요즘 삶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물질에 치여 살아가는 삶 대신 스스로 홀가분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픈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엄청난 의미가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이 생기면 기꺼이 즐겁게 이웃들에게 나누면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니 미니멀리즘은 아마도 일석십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삶 대신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좋은 삶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삶 말이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페이스북 창립자 저커버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단다. ‘이 공동체를 가장 잘 섬기는 것 외에는 해야 할 결정의 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나부터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눈부신 가을날에 무소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깃털처럼 가볍게 저 푸른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