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양말 빵꾸났네

내 양말 빵꾸났네

by 한희철 목사 2018.03.21

다른 프로그램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원고를 컴퓨터 한글파일로 작성하다 보면 도움을 받게 되는 기능이 있습니다.자판을 두드려 원고를 쓰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탈자나 오자를 찾아내 줍니다. 잘못된 띄어쓰기도 알려주고요. 잘못된 글자 아래 붉은색 줄을 긋는 방식이지요. 원고를 다 쓴 뒤 교정을 볼 때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번 주 원고 제목인 ‘내 양말 빵꾸났네’를 쓰자, 대뜸 ‘빵구났네’라는 글자 아래 붉은색 줄이 나타납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표시지요. 글자 앞에 커서를 대고 클릭을 하자 그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바른 단어가 표기되는데, ‘구멍 나다’가 맞는 말이라 일러줍니다.

‘빵꾸’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옷이나 양말 팬티 등에 구멍이 나면 빵꾸가 났다고 했고, 자전거 타이어에 못이 박히거나 바람이 빠져도 빵꾸가 났다고 했습니다.

한 번 익숙해졌기 때문일까요, 그 말이 펑크(puncture)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가난하다 보니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양말을 신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대개는 형이나 누나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었는데,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 빵꾸나 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나 빵꾸가 난 양말을 신은 모습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빵꾸가 난 옷과 양말을 부지런히 꿰매던 어머니들의 모습도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구멍이 나거나 해진 옷에 다른 천을 대고 꿰매기도 했는데, 때로는 시대를 앞서가는 멋진 패션 감각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꿰매기의 좀 더 정교한 기술인 ‘짜깁기’도 잘 하셨습니다. 양복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한 올 한 올을 엮어 티 안 나게 복원을 했는데, 버릴 옷을 살려내는 것은 멋진 기술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 속 흑백사진처럼 남아 있는 모습 중에는 전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필라멘트가 끊어진 동그란 전구를 양말 속에 집어넣고 뚫어진 양말을 꿰맸지요. 유리로 된 전구로 인해 양말 꿰매기가 수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빵꾸난 양말과 관련, 어릴 적 자주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이랬습니다. “내 양말 빵꾸났네, 빵꾸난 내 양말, 빵꾸가 안 난 것은 내 양말 아니죠.” 내남없이 빵꾸가 난 양말을 신고 있었기에 굳이 누구 따로 부끄러워 할 것도 없이 어린 우리들은 키득키득 웃어가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서로의 빵꾸난 양말과 빵꾸난 곳으로 드러난 시커먼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바라보며 말이지요.

가사를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내 양말 빵꾸가 났다고 노래를 하다니, 부끄러워 숨기는 대신 거듭 밝히다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빵꾸가 안 난 것은 내 양말 아니라고 대놓고 선언을 하다니, 건강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싶습니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오늘 우리가 그만한 건강함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