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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치 지켜온 풍차마을

전통 가치 지켜온 풍차마을

by 이규섭 시인 2018.03.23

네덜란드 풍차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는 3월 초 들렀는데 겨울의 잔해가 남았다. 얼어붙은 수로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주민들을 보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종합 5위 저력을 실감한다.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 보다 낮아 수로가 발달된 탓으로 예전부터 스키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어렸을 적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즐겨 선수층이 두텁다. 15㎝ 이상 얼음이 얼면 200㎞를 달리는 ‘스케이팅 마라톤’을 여는 나라다.

거대한 풍차들이 느릿느릿 돈다. 그림엽서와 사진으로 눈에 익는 풍경이 걸어 나와 눈앞에 펼쳐지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바람개비를 날리던 소년 시절 추억이 바람에 실려와 부푼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 파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풍차는 한 폭의 그림이다. 17∼18세기에 지은 목조 가옥은 고즈넉하고 강변의 17세기 풍 맞배지붕 ‘파사드’ 건물은 환상적이다.

집과 골목을 이어주는 앙증맞은 구름다리, 마당의 염소와 닭, 물가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백조와 오리는 동화 같은 목가적 풍경이다.

국토가 해수면 보다 낮다 보니 물을 퍼 올리려면 바람의 힘을 이용한 풍차가 필수다. 간척사업서부터 나무를 켜거나 곡물을 빻고 기름을 짜는데 활용했다.

18세기엔 풍차가 700여 개 넘었다고 하나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은 관광용 6기가 돌고 있다.

드 주거(De Zoeker)라 이름 붙은 풍차에서는 옥수수로 기름을 짜고 곡식을 빻는다. 4.7유로의 입장료를 받는 관광 전시용이다. 내부는 예전 시골의 물레방아 구조와 비슷하다.

네덜란드의 상징 튤립은 염분이 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봄이 무르익는 4∼5월께 방문해야 볼 수 있다. 남동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튤립은 16세기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에서 투기 열풍을 일으키며 주식처럼 거래됐다.

17세기 땐 흑튤립 구근 1개 값이면 운하에 인접한 5층짜리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니 꽃이 아니라 보물 대접을 받았다.

마을 들머리에 위치한 치즈 공방을 둘러봤다. 전통 복장을 한 치즈 아가씨가 입구에서 반긴다. 기념사진 모델 역할도 한다. 치즈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맛보고 현장에서 구입한다. 고다(Gouda) 치즈는 단단하고 수분 함량이 적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식료품의 국내 반입은 까다로운데 이곳에서 포장해준 대로 가지고 오면 입국 때 통관이 된다.

풍차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는 나막신 공방. 하천의 범람이 심하고 땅이 질척한 시절에 나막신은 생활필수품이다. 공방 입구엔 꽃무늬를 새긴 대형 나막신을 전시해 놓았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사진도 찍는다. 공방 벽면엔 대를 이어 나막신을 만드는 장인들을 소개한 기사와 사진, 다양한 나막신을 전시해 놓았다.

정교한 무늬와 조각, 화려한 채색 등 예술의 경지다. 나막신 제조 과정을 재현한다. 요즘은 수작업 보다 기계로 작업을 한다. 자기로 만든 관광기념품용 나막신도 판다.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해마다 160만 명이 찾는 관광지다.

400여 년 지켜온 전통의 가치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