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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떨어져 본다는 것

한 걸음 떨어져 본다는 것

by 순천광양교차로신문 2018.03.27

춘분이 지나 이제 봄기운이 제법 느껴진다.몇 일전 전국에 서설(瑞雪)이 내리기도 했지만 누가 뭐라 해도 봄은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다.

추운 겨울, 과연 봄이 올까 살짝 염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오고 마는 것을 보니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한 아름 밀려온다.

봄이 와서 그런 것일까. 나른함이 하품과 함께 온몸을 감싸고 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얼마 전 이 촌놈이 머나먼 곳에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생긴 시차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지중해를 따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중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각인된 것 하나, 밤새 지중해를 항해하고 아침이 되어 몰타항으로 귀항할 때 크루즈에서 만난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항구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와...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유구무언, 언어도단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만일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과연 이 아름다운 풍광을 접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 저만치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 눈부신 장관을 만나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는 생각에 온몸에 흥분과 전율이 느껴졌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와 그 황홀한 순간을 삶 속에서 되뇌인다.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기꺼이 펼쳐본다.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한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그 자리의 실상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이치를 온몸으로 껴안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평생을 함께 하는 부부도, 그리고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 이치는 그대로 유효하다.

바짝 다가서면 오히려 초점이 흐려진다. 아니 때론 초점 자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어 초점이 잘 맞아 선명한 상이 생긴 경우가 아닐까.
그러니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며 생각해보면 어떨까.

또한 삶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답답할 때 지금 그 삶에서 한 발짝 떨어지면 어떨까. 여행도 좋고 잠시 다른 공간으로 떠나 다른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간적 거리는 거의 어김없이 시간의 여유를 가져와 마음의 넉넉함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가 겪은 일상의 희로애락도 그 속에 빠져 있으면 늪에서 허우적대듯 감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옥죄는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기꺼이 한걸음 물러나는 작은 용기를 내야 한다. 행동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지혜가 바로 이것이다.

바로 눈앞의 아이의 모습에 시시비비 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날 때 아이의 진짜 모습이 보이고 사랑의 고갱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갓 피어난 봄꽃, 3월의 하얀 눈이 아름다운 것도 내가 한 걸음 떨어져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바심을 거두고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거리’를 두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자.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 본래의 진짜 모습이 가슴 벅차게 느껴질 것이니.

그때 불어오는 봄바람이며, 시선을 사로잡는 봄 들꽃이 그대로 나의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