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형감입니다
당신은 사형감입니다
by 한희철 목사 2018.03.28
우리가 흔하게 나누는 인사 중에는 “식사하셨어요?” “진지 잡수셨어요?” “밥 먹었니?”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밥 먹는 시간과 겹쳐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관심일까요, 배고픈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이 인사로 자리 잡은 사연이 슬쩍 궁금해집니다.
로마 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이 있다고 합니다.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라는 말인데, ‘당신이 평안하면, 나도 평안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당신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하다는, 당신이 평안하지 못하면 나도 평안할 수가 없다는, 당신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그윽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싶습니다.
지난주에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열하루 동안 DMZ를 따라 동쪽 끝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서쪽 끝 파주 임진각까지 약 380km를 혼자서 걸었던 이야기가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발간이 되었는데, 부산에서 북 콘서트를 열어 다녀오게 된 것이지요.
광명역으로 나가 KTX를 탔습니다. 명함 크기만 한 표를 끊고 꼼꼼하게 검사를 하며 기차를 탔던 것도 이젠 옛일이었습니다.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기차에 올라 예약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는데, 부산까지 가는 동안 따로 표를 검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몇몇 동행하는 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부산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싶은데 벌써 안내 방송에서는 부산을 알렸습니다. 부산이 가까운 이웃 동네처럼 느껴졌습니다.
북 콘서트가 열리는 프라미스랜드에는 깔려 드는 땅거미를 따라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이라 그랬을까요, 빈자리가 따로 보이지 않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고마움은 단지 내 글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국내외에 이름이 난 길이 적지 않은데 굳이 DMZ를 택한 이유에 대한 관심이라 여겨졌습니다. 불신과 증오로 갈라진 땅을 한 마리 벌레처럼 걸어간 일은 갈라지고 해진 땅을 호는(성기게 꿰매는 일을 ‘호다’라 합니다) 일, 책을 읽은 누군가가 그 길을 다시 걷는다면 우리의 깊은 상처는 더욱 촘촘하게 꿰매질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사회자는 옆에 앉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자고 권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가 하는 말을 따라 하라며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당신은 사형감입니다.” 순간 와락 웃음이 터졌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사회자의 말을 이렇게 따라 했지요. “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당신은 무죄입니다.”
‘당신은 사형감입니다’ 해도 기분 좋게 웃고, ‘당신은 무죄입니다’ 해도 슬쩍 서운한 척을 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로 인사를 나누던 우리가 나누는 인사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행복한 인사였으면 좋겠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이 있다고 합니다.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라는 말인데, ‘당신이 평안하면, 나도 평안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당신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하다는, 당신이 평안하지 못하면 나도 평안할 수가 없다는, 당신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그윽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싶습니다.
지난주에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열하루 동안 DMZ를 따라 동쪽 끝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서쪽 끝 파주 임진각까지 약 380km를 혼자서 걸었던 이야기가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발간이 되었는데, 부산에서 북 콘서트를 열어 다녀오게 된 것이지요.
광명역으로 나가 KTX를 탔습니다. 명함 크기만 한 표를 끊고 꼼꼼하게 검사를 하며 기차를 탔던 것도 이젠 옛일이었습니다.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기차에 올라 예약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는데, 부산까지 가는 동안 따로 표를 검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몇몇 동행하는 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부산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싶은데 벌써 안내 방송에서는 부산을 알렸습니다. 부산이 가까운 이웃 동네처럼 느껴졌습니다.
북 콘서트가 열리는 프라미스랜드에는 깔려 드는 땅거미를 따라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이라 그랬을까요, 빈자리가 따로 보이지 않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고마움은 단지 내 글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국내외에 이름이 난 길이 적지 않은데 굳이 DMZ를 택한 이유에 대한 관심이라 여겨졌습니다. 불신과 증오로 갈라진 땅을 한 마리 벌레처럼 걸어간 일은 갈라지고 해진 땅을 호는(성기게 꿰매는 일을 ‘호다’라 합니다) 일, 책을 읽은 누군가가 그 길을 다시 걷는다면 우리의 깊은 상처는 더욱 촘촘하게 꿰매질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사회자는 옆에 앉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자고 권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가 하는 말을 따라 하라며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당신은 사형감입니다.” 순간 와락 웃음이 터졌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사회자의 말을 이렇게 따라 했지요. “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당신은 무죄입니다.”
‘당신은 사형감입니다’ 해도 기분 좋게 웃고, ‘당신은 무죄입니다’ 해도 슬쩍 서운한 척을 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로 인사를 나누던 우리가 나누는 인사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행복한 인사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