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봄비
by 김민정박사 2018.04.09
얼얼하고 알싸하게 귓바퀴가 젖을 동안제 기운 보란 듯이 꽃샘바람 들며난다
촉촉이
머금은 봉오리
질세라 앙다문다
바람과 물의 혀가 너를 핥고 가는 길목
어지러이 엎어지며 꽃물 풀물 토하더니
한 생각
적실 듯 말 듯
보슬비가 내린다
- 졸시, 「봄비」 전문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봄날이다. 3월 초에 썼던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봄눈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맺더니, 어느새 화들짝 봄꽃이 피더니, 또 봄비에 화르르 화르르 목련이 지고, 벚꽃도 화려하게 꽃잎 날리며 지고 있다. 벚꽃 지는 것을 보면서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가 생각난다.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젖어 드는 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시가 좋은 시일 것이다. 이 시는 벚꽃 지는 철이 되면 가슴에서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외웠었고, 교단에 있으면서도 학생들에게 무수히 가르쳤던 시이기 때문일까? 1년 내내 떠오르진 않지만, 이때쯤 되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시가 바로 이 시다.
생전에 아름답게 살다가 질 때도 꽃답게, 아름답게 질 수 있는, 끝까지 아름다운 인생이기를, 끝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이 시를 떠올리며 음미해 보는 것이리니……. 언제나 추하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간직되기를!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과한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배려하며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기를! 비록 어느 날, 우리들의 삶이 끝나고, 우리들의 사랑이 끝나더라도 살아왔던 날들이, 함께 나누었던 날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조금은 어리숙하게 인생을 살더라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삶이 되어 때가 되면 분분히 떠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분분히 지는 낙화, 아름다운 벚꽃엔딩 사이로 뾰족뾰족 초록의 새순들을 내밀며 돋아나는 나무들의 모습은 어찌 또 그리 아름다운가.
저 새순들이 또 자라 아름다운 잎을 피우고, 쨍쨍한 햇살 속에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새들도 그 속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스스로 나이테를 키우며 나무는 커 갈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잎을 피울 줄 아는 자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느끼는 봄이다.
세상의 초록을 온통 적시며, 더 넓게 번져가며 만물을 자라게 하는 봄비, 한 생각도 적실 듯 말 듯 봄비가 소리 없이 조용히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은 더 푸르러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그리고 내 마음도 한 뼘쯤 더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촉촉이
머금은 봉오리
질세라 앙다문다
바람과 물의 혀가 너를 핥고 가는 길목
어지러이 엎어지며 꽃물 풀물 토하더니
한 생각
적실 듯 말 듯
보슬비가 내린다
- 졸시, 「봄비」 전문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봄날이다. 3월 초에 썼던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봄눈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맺더니, 어느새 화들짝 봄꽃이 피더니, 또 봄비에 화르르 화르르 목련이 지고, 벚꽃도 화려하게 꽃잎 날리며 지고 있다. 벚꽃 지는 것을 보면서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가 생각난다.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젖어 드는 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시가 좋은 시일 것이다. 이 시는 벚꽃 지는 철이 되면 가슴에서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외웠었고, 교단에 있으면서도 학생들에게 무수히 가르쳤던 시이기 때문일까? 1년 내내 떠오르진 않지만, 이때쯤 되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시가 바로 이 시다.
생전에 아름답게 살다가 질 때도 꽃답게, 아름답게 질 수 있는, 끝까지 아름다운 인생이기를, 끝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이 시를 떠올리며 음미해 보는 것이리니……. 언제나 추하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간직되기를!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과한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배려하며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기를! 비록 어느 날, 우리들의 삶이 끝나고, 우리들의 사랑이 끝나더라도 살아왔던 날들이, 함께 나누었던 날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조금은 어리숙하게 인생을 살더라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삶이 되어 때가 되면 분분히 떠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분분히 지는 낙화, 아름다운 벚꽃엔딩 사이로 뾰족뾰족 초록의 새순들을 내밀며 돋아나는 나무들의 모습은 어찌 또 그리 아름다운가.
저 새순들이 또 자라 아름다운 잎을 피우고, 쨍쨍한 햇살 속에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새들도 그 속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스스로 나이테를 키우며 나무는 커 갈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잎을 피울 줄 아는 자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느끼는 봄이다.
세상의 초록을 온통 적시며, 더 넓게 번져가며 만물을 자라게 하는 봄비, 한 생각도 적실 듯 말 듯 봄비가 소리 없이 조용히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은 더 푸르러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그리고 내 마음도 한 뼘쯤 더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