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사람이 되자
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사람이 되자
by 한희철 목사 2018.04.11
지난해 열하루 동안 DMZ를 따라 홀로 걸었던 이야기가 이번에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책을 통해 지난 시간을 대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마치 정지되어 있던 시간들이 영사기 돌아가듯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열하루의 시간을 혼자 걸으며 가졌던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기도였습니다. 두 가지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두 번째 기도를 드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기도하는 중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떠오르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면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 스스로 궁금했지만 전혀 짐작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만난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는 기억이 가닿는 한 가장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가족이었을 테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 형들과 누이들, 가족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뛰어놀던 친구들, 선후배들, 어른들도 떠올랐습니다. 고향교회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에 굶주렸던 그 시절, 허름한 예배당에서 이어지던 성경연속동화는 얼마나 우리들의 목을 길게 만들었던지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신학대학,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순서대로 떠올렸습니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기억의 창고 속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목회 여정을 따라 기도를 했습니다. 부곡교회, 미아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그러다가 첫 목회지인 단강교회에 이르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한 분씩 떠올랐습니다.
떠올릴 때마다 그분들이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 것도 같았습니다.
기도는 프랑크프르트교회와 현재 목회하고 있는 성지교회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기도를 드리는 데에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무한대로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하루의 시간에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된 까닭은 그런 경험 때문입니다.
열하루의 시간을 혼자 걸으며 가졌던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기도였습니다. 두 가지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두 번째 기도를 드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기도하는 중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떠오르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면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 스스로 궁금했지만 전혀 짐작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만난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는 기억이 가닿는 한 가장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가족이었을 테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 형들과 누이들, 가족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뛰어놀던 친구들, 선후배들, 어른들도 떠올랐습니다. 고향교회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에 굶주렸던 그 시절, 허름한 예배당에서 이어지던 성경연속동화는 얼마나 우리들의 목을 길게 만들었던지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신학대학,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순서대로 떠올렸습니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기억의 창고 속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목회 여정을 따라 기도를 했습니다. 부곡교회, 미아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그러다가 첫 목회지인 단강교회에 이르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한 분씩 떠올랐습니다.
떠올릴 때마다 그분들이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 것도 같았습니다.
기도는 프랑크프르트교회와 현재 목회하고 있는 성지교회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기도를 드리는 데에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무한대로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하루의 시간에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된 까닭은 그런 경험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