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턴 투워드 부산’, 그리고 ‘6610’

‘턴 투워드 부산’, 그리고 ‘6610’

by 이규섭 시인 2018.06.01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영국인 한국전 참전 용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는 보도다. 1988년부터 30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았다니 열정이 놀랍고 정성이 지극하다.화제의 주인공은 제임스 그룬디. 올해 여든여섯으로 말기 암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도 참배한 뒤 강연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한다.

그는 1951년 2월 열아홉 살 때 한국전에 참전했다. 총탄에 쓰러진 동료들의 주검을 찾는 시신 수습병이었다. 전쟁의 고통만큼 마음을 무겁게 만든 건 무명용사들이었다는 것.

영국에서 경찰관으로 일했던 그는 2006년부터 영국 현지 신문에 광고를 내 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우들의 사진 300여 장을 구해 기증했다.

40, 50년 전만 해도 DNA 테스트를 통해 신원을 밝힐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모님들이 타계하여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전한다.

그는 사후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원했고 그 뜻이 이뤄져 한국 땅에 영면할 수 있게 됐다.

몇 해 전 퇴직 언론인 단체로 둘러본 유엔기념공원은 넓고 장엄하다. 묘지마다 정사각형 소반 형태로 다듬은 나무 양 곁에 작은 대리석을 깔아 놓았다. 대리석 동판엔 전사자의 국적과 이름, 생년월일, 전사시기를 새겨 놓았고, 한쪽은 꽃 한 송이 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소박하다.

묘역 둘레의 수목들은 조각품처럼 잘 다듬어 놓았다. 묘역과 녹지지역 사이 110m의 물길은 ‘도운트 수로(水路)’로 기억에 뚜렷하다. 만 열일곱 살 때 참전하여 숨진 호주 출신의 도운트 상병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유엔군 최연소 전사자다.

이곳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11개국 2300위의 유엔군 장병이 안치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오래전 둘러본 태국 깐짜나부리에도 작은 규모의 유엔 묘역이 있지만 유엔 차원에서 관리 하는 곳은 아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묘지도 마찬가지다. 유엔기념공원 주변엔 수목원, 조각공원, 박물관,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유엔묘지의 존엄성이 돋보인다.

부산시는 부근에 ‘유엔기념광장’ 조성과 부산전쟁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을 중심으로 관련 주변 명소들과 어우러져 ‘피란 수도 부산’이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의 상징 ‘유엔 도시 부산’으로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세계 21개 국가는 해마다 한국 시각으로 11월 11일 오전 11시에 맞춰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를 한다.

‘부산을 향하여’라는 이 행사는 2007년 캐나다 참전 용사 커트니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듬해 한국 정부 주관으로 격상됐고, 2014년 참가국이 21개 국으로 늘어 국제적인 추모행사로 확대됐다.

울산보훈지청은 현충일인 6월 6일 오전 10시, 전국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에 맞춰 1분간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묵념에 동참하자는 ‘6610’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호국영령들의 얼을 잊고 산다. 현충일, 조기를 달고 묵념으로 감사의 예를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