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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힘

스토리텔링의 힘

by 이규섭 시인 2018.06.08

스토리텔링은 인간과 인간의 감성을 이어주는 소통의 맛깔스런 양념이다.교육과 문학, 영상문화 등 모든 서사 형식에 폭넓게 응용되어 맛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도 스토리텔링이다.

K팝 역사를 새로 쓴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의 핵심도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된 콘텐츠의 힘이 크다.

스토리텔링은 관광에도 오감을 발휘한다. 유럽 ‘3대 허무 관광지’로 손꼽히는 ‘로렐라이 언덕’과 ‘오줌싸개 동상’, ‘인어공주 상’의 인기가 여전한 것은 스토리텔링의 영향이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까까머리 소년은 독일 민요 로렐라이를 따라 부르며 아름다운 소녀의 금빛 머릿결을 떠올렸다. 1823년 하이네가 쓴 시에 1838년 프리드리히 질허가 곡을 붙여 전 세계의 국경을 넘어 전해지면서 아련한 환상을 불러일으킨 노래다.

라인강 물길을 따라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로렐라이 언덕 아래에 이르면 요정(사실은 마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홀려 넋을 잃는다. 요정을 바라보는 사이 배는 중심을 잃고 암초에 부딪혀 난파한다. 단순한 전설에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혀 화려하게 거듭났다.

로렐라이 언덕 부근은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물살이 급하게 휘어 소용돌이쳐 평소에도 배가 자주 난파하는 곳이다. 근처 샛강 둑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로렐라이 마녀상’도 생뚱맞기는 마찬가지다. 로렐라이 언덕 위 ‘요정의 바위’에 ‘이곳이 해발 193.14m이고 라인강에서 125m 떨어진 지점’이라고 쓴 동판을 붙여 놓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지만 패키지 일정상 오르지는 못했다.

로렐라이 언덕은 허무해도 쾰른에서 화이트 와인의 고장 뤼데스하임으로 가는 길목은 중세의 고성을 품고 있어 고풍스럽다. 제후들이 살았던 막스부르크 성, 라인펠로 성 등은 호텔과 박물관 등으로 바뀌었다. 강심을 가르며 느릿느릿 오르내리는 화물선, 강변을 끼고 달리는 기차, 철길 옆 자동차도로가 삼행선으로 흘러 풍경이 된다. 짧은 구간 도로 보수공사로 긴 산악도로를 우회해가며 고원지대 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를 만난 건 여행의 덤이다.

벨기에의 마스코트 ‘오줌싸개 동상’도 소문대로 허무하다. 브뤼셀의 심장 그랑플라스 광장 뒷골목에 접어드니 줄리앙 소년이 오줌을 누고 있다. 앙증스러운 60㎝ 청동상 앞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이다. 오줌싸개 동상은 400년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인기를 누리는 것 역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동상의 기원설은 다양하지만 이곳이 한때 오줌시장이라는 설이 그럴듯하다. 가죽제품을 부드럽게 하려면 오줌이 필요했다. 어린 소년이 마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오줌을 싸자 화가 난 마녀가 동상으로 만들었다는 설화, 프랑스 군 침략 때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꺼 도시를 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화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한 해 수백만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국빈이 방문할 때 기념으로 만들어온 옷 600여 벌을 수시로 갈아입혀 호기심을 유발한다. 오줌싸개 캐릭터를 활용한 머그 컵, 병따개, 열쇠고리 등 관광 상품도 인기다.

수많은 전설을 품고 있는 한국의 산하도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히거나 창의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