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누가 인생을 시시하다 하는가

누가 인생을 시시하다 하는가

by 김재은 대표 2018.06.12

2018년 6월 7일새벽 2시 30분 옆구리 아래 심한 복통이 밀려옴(이것은 거의 틀림없는 요로결석)
2시 35분 : 견디다 못해 가족들 깨움
3시 : 인근 병원 응급실에 도착
4시 : 진통제와 수액 투여/CT 촬영
6시 30분: 통증 진정되어 귀가
7시~9시 :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다시 통증이 올까 두려움에 떨며)
10시 : 사무실 출근
10시~오후 2시 : 업무
오후 3시 30분 : 용인 죽전역 서류 받으러 감(사회복지법인 준비)
오후 5시 30분 : 옥수동 미용실 머리 손질
오후 6시 30분 : 귀가
가족들과 국수로 식사, 치킨 배달시켜 맥주 한 잔(요로결석 제거가 주목적), TV시청(기아와 KT 야구경기)
오후 11시 : 취침

바로 어제, 나의 하루 일과이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했으니 긴 하루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잡다한 나의 하루를 ‘시시하게’ 나열한 이유가 있다.

특별함이 없이 시시하지만 나의 삶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구 할 것 없이 하루, 하루가 모여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시시하든 안 하든 그 하루가 나의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 뭔가 느껴지지 않는가?

살아온 수십 년의 삶을 들여다본다. 하루하루 그게 그것인 듯 살아왔는데 난 어린아이에서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가 되어있다. 삶의 의미를 쫓아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잘못 살아온 것일까?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며(난 이것을 설거지 명상이라고 부른다) 생각했다.

어쩌면 삶은 시시한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 그대로 시시콜콜한 일상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어쩌면 50년도 훨씬 넘은 인생살이에서 얻은 커다란 수확물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를 ‘다람쥐 쳇바퀴 돈다’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삶의 본류인 것을 어찌하랴.

우리가 할 일은 그 시시함 속에 가끔씩 호기심이나 경이로움, 기쁨 한 조각을 양념삼아 넣는 것이 아닐까.

삶의 시시함의 본질을 무시한 채 하루 24시간 내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 아등바등하다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러니 시시한 일상을 무시하지 말자. 짜증 내거나 따분해하거나 지루해하지도 말자.

그 순간 내 인생은 짜증스럽고 따분해지고 지루해진다. 그냥 그대로의 시시함을 즐기자.

지금 내 앞의 시시한 일도, 작은 인연도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자.

시시한 일상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 늘 그게 그것 같았던 다람쥐 쳇바퀴에서 온갖 보물이 쏟아져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오늘 그냥 ‘그렇고 그런’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시했기에 제대로 된 하루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시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당신이 진정 멋쟁이가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