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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拙速)의 행복학

졸속(拙速)의 행복학

by 김재은 대표 2018.07.19

언제부터인가 오지랖 넓은 삶을 살아가다 보니 정말이지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이를 놓칠세라 ‘행동파’의 리더인양 시도하는 일이나 프로그램이 많다.

그런데 무작정 시작부터 하고 보니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 아쉬움을 느끼는 때가 많다. ‘나는 왜 그럴까’하며 자책하면서도 나름의 재미가 느껴져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게 있다.

몇 해 전이다. 한 SNS 커뮤니티 모임에서 접한 단어가 하나 있다.

‘졸속(拙速)’이다. 졸속행정이나 졸속처리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서투르지만 빠르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서둘러 함으로써 그 결과나 성과가 바람직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아~ 그런데 나의 삶을 살펴보니 바로 ‘졸속’의 삶 그대로였다.

어라, 그런데 졸속의 어원을 파고 들어가니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손자(孫子)의 〈작전편(作戰篇)〉의 병문졸속(兵聞拙速)에서 유래된 졸속에 대해 알아보자.

춘추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는, 전쟁은 지구전이 아닌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야 한다고 하였다. 손자가 속전속결을 주장한 이유는 지구전을 치를 때의 폐단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손자는 전쟁 준비가 다소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속전속결을 추구하여 승리한 경우는 들어 보았지만,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장기전을 치르며 승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일갈했다.

교지졸속(巧遲拙速)이란 말도 있다.

뛰어나지만 늦는 사람보다, 미흡해도 빠른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이다.

졸속(拙速)이 지완(遲完)을 이긴다는 말도 그러하다.

전쟁이라고 해서 완벽한 준비를 하고 싸우기는 쉽지 않으니까.

우리가 하려는 일도 여기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에서만큼 비장함은 가질 수 없지만 부족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동을 해서 일이 내 마음대로 뜻대로 안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다시 행동하면 되지만, 이런저런 생각만으로는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래서 실패도 없다. 그래서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음’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조건이나 상황이 다 갖춰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릴 수도 있고, 아예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상황에서 삶을 즐기며 최선을 다할 때 기회는 나의 것이 된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우의 묘비명을 떠올린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듯 졸속은 편견을 깨뜨리며 나에게로 왔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어떤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며 멈칫멈칫하는 삶에 하나의 돌파구가 되기도 하는게 ‘졸속’이다.

유예하는 삶, 포기하는 삶 대신 기꺼이 즐겁게 시도하는 삶이야말로 졸속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졸속의 행복학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