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扇風)기와 선풍(善風)기
선풍(扇風)기와 선풍(善風)기
by 김재은 대표 2018.08.07
어릴 적 이야기다. 고향 농촌마을, 아침이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웃집을 기웃거리며 인사를 하곤 했다.밤새 안녕하셨느냐고. 요즘으로 치면 굿 모닝(좋은 아침!)쯤 될 것이다. 배고픈 시절이라 안부 대신 아침진지를 드셨냐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웃 간의 정을 쌓아가고 행여 무슨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다는 응원의 표시이기도 했다.
요즘 추억 속의 아침 인사를 다시 그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연일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잠을 설치곤 하기 때문이다.
열대야가 십수일 계속되고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치원 아이부터 백수를 앞둔 노인까지 모두가 ‘내 평생 이런 더위는 없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이기도 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더위 속에 겨우 잠이 들어 새벽녘에 눈을 뜨니 선풍기가 돌고 있다.
고마운 저 아이는 밤새 고생하며 제 할 일을 묵묵하게 했는데 나는 염치없이 잠만 잔 것이었다. 순간 미안감이 밀려오고 내가 지금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헤아려 보게 되었다.
선풍기 이야기를 하자니 자연스럽게 부채가 따라온다. 더위의 열기를 인위적인 바람으로 식혀 보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발명품이 부채이다.
그런데 부채질을 하는 것은 때로는 자연(더위, 비)을 견디지 못하고 기교로 벗어나려는 것은 일종의 사치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채를 사용하는 것은 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것으로 해석, 고려 시대에는 부채를 사용하거나 우산을 쓰는 것을 금지한 적도 있었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재미있다.
어쨌거나 부채처럼 선풍기 또한 바람을 전하는 고마운 도구임은 틀림이 없다.
바람을 선물하니 말 그대로 선풍(扇風)기이면서 선풍(善風)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먼 훗날 내가 선풍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풍기라기보다는 선풍(善風)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행복바람, 감사바람,응원바람, 격려바람으로 세상의 불신과 불평, 불만과 비난 등을 날려 보내는 따뜻하고 힘이 센 선풍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에게 부채를 부치면 상대뿐만 아니라 나도 시원하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낮잠을 자고 있는 손주에게 부채질을 하면 바람 한 조각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남겨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듯 이타행(利他行)엔 언제나 이기(利己)가 따라다닌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리면 나에게 바로 보람이 느껴지거나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행복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등 뒤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다시 선풍기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올해는 극심한 더위에 부채나 선풍기가 에어컨에 밀려 관심이 덜하지만 이 여름의 동반자로서 그들은 부족함이 없다.
8월의 태양이 작열하며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중복을 지난 세월의 기관차는 어느새 오늘 입추역에 도착했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고 다 지나가는 법이다.
이 여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위해 수고해 준 그 선풍(扇風)기처럼 나는 제대로 된 선풍(善風)기가 될 수 있을까. 빚을 지고는 못사는데 어찌 하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웃 간의 정을 쌓아가고 행여 무슨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다는 응원의 표시이기도 했다.
요즘 추억 속의 아침 인사를 다시 그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연일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잠을 설치곤 하기 때문이다.
열대야가 십수일 계속되고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치원 아이부터 백수를 앞둔 노인까지 모두가 ‘내 평생 이런 더위는 없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이기도 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더위 속에 겨우 잠이 들어 새벽녘에 눈을 뜨니 선풍기가 돌고 있다.
고마운 저 아이는 밤새 고생하며 제 할 일을 묵묵하게 했는데 나는 염치없이 잠만 잔 것이었다. 순간 미안감이 밀려오고 내가 지금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헤아려 보게 되었다.
선풍기 이야기를 하자니 자연스럽게 부채가 따라온다. 더위의 열기를 인위적인 바람으로 식혀 보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발명품이 부채이다.
그런데 부채질을 하는 것은 때로는 자연(더위, 비)을 견디지 못하고 기교로 벗어나려는 것은 일종의 사치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채를 사용하는 것은 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것으로 해석, 고려 시대에는 부채를 사용하거나 우산을 쓰는 것을 금지한 적도 있었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재미있다.
어쨌거나 부채처럼 선풍기 또한 바람을 전하는 고마운 도구임은 틀림이 없다.
바람을 선물하니 말 그대로 선풍(扇風)기이면서 선풍(善風)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먼 훗날 내가 선풍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풍기라기보다는 선풍(善風)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행복바람, 감사바람,응원바람, 격려바람으로 세상의 불신과 불평, 불만과 비난 등을 날려 보내는 따뜻하고 힘이 센 선풍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에게 부채를 부치면 상대뿐만 아니라 나도 시원하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낮잠을 자고 있는 손주에게 부채질을 하면 바람 한 조각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남겨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듯 이타행(利他行)엔 언제나 이기(利己)가 따라다닌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리면 나에게 바로 보람이 느껴지거나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행복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등 뒤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다시 선풍기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올해는 극심한 더위에 부채나 선풍기가 에어컨에 밀려 관심이 덜하지만 이 여름의 동반자로서 그들은 부족함이 없다.
8월의 태양이 작열하며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중복을 지난 세월의 기관차는 어느새 오늘 입추역에 도착했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고 다 지나가는 법이다.
이 여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위해 수고해 준 그 선풍(扇風)기처럼 나는 제대로 된 선풍(善風)기가 될 수 있을까. 빚을 지고는 못사는데 어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