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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문화가 되다

식물, 문화가 되다

by 이규섭 시인 2018.11.23

서울식물원은 서울 서남권에 새로 생긴 명소다. 지난 10월부터 임시개장 중인데도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는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지인들과의 월례 만남을 그곳으로 정했다.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 3번 출구를 나오니 드넓은 공원광장이 펼쳐진다.

공원 부지는 넓다. 50만4000㎡(15만2500평)로 여의도공원의 두 배 넘는다. 공원은 크게 열린 숲,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네 구역이다. 온실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수와 화단, 잔디밭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온실까지 동선이 길고 헷갈린다.

곳곳에 토종 갈대 보다 붉은 갈대 ‘핑크 뮬리’를 많이 심어 한강변 식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천년고도 경주의 첨성대 주변을 붉게 물들인 핑크 뮬리가 눈에 거슬렸던 탓도 있다.

붉은 칠을 한 대형 화분에 주목을 트리형으로 다듬어 도열해 놓은 것도 나무의 입장에선 숨통이 조인다.

이곳은 한강 하류 저지대로 주로 논농사를 짓던 땅이다. 홍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역류하여 농작물 피해가 컸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배수펌프장을 설치하여 한강 물이 역류하면 갑문을 닫고 농경지의 물을 뽑아냈다.

배수펌프장 기능은 1991년 폐지됐다.

콘크리트 옹벽위에 지어진 일식 목조건물(등록문화재 363호)은 근대산업유산 중 농업 관련 배수펌프장으로는 유일하다. 농업사 측면은 물론 건축적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수리조합배수펌프장은 보수공사를 거쳐 ‘마곡문화관’으로 거듭났다. 이곳에서는 2019년 4월 14일까지 ‘마곡 이야기’ 기획전이 열린다. 마곡지구 토박이 이야기, 땅의 기억을 담은 농부의 이야기, 젊은 시절을 함께한 마곡·방화·개화 이야기가 군고구마처럼 달착지근하다.

온실의 명칭은 ‘식물문화센터’. 휴일이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이 많다. 유모차에 어린이를 태우고 온 젊은 엄마는 “너무 좋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실내는 온도와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해 겉옷을 벗어든다. 열대 식물과 지중해 식물들이 발길을 잡는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는 별처럼 빛난다. 변경주선인장은 소싯적 즐겨보던 서부영화의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걸어 다니는 나무’로 불리는 소크라테아엑소리자는 생소하고 긴 이름만큼 눈길을 끈다. 온실은 케이프타운, 아테네, 샌프란시스코, 상파울루, 하노이, 로마 등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식물을 식재해 놓았다. 3100여 종이나 된다는 식물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온실 위쪽에 설치해 놓은 ‘스카이워크’를 걸으면 식물원 내부가 발아래 펼쳐져 숲속 위를 걷는 느낌이다. 정식 개장은 내년 5월이다.

‘식물, 문화가 되다’가 슬로건인 서울식물원은 식물과 문화를 접목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린이정원학교를 개설하여 ‘식물을 통해 떠나는 세계여행’ ‘식물탐험대’ 등 진행 중이다.

노년층을 위한 원예치료 프로그램, 시민 대상 생활 정원사 프로그램 등은 식물문화 대중화의 길잡이다.

식물의 숨결엔 흙냄새가 난다. 강인한 생명력이 솟는다. 식물의 습성을 알고 가꾸면 생활은 문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