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by 한희철 목사 2018.12.26

지난주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을 때 신기한 모습을 보았습니다.로봇 청소기가 사람 사이를 지나가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누군가와 부딪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잠시 지켜보았더니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용케도 사람 앞에서는 멈춰 섰고, 안전한 공간이 생기자 다시 움직였습니다.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갈수록 기계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따금씩 TV로 바둑 중계를 보면 AI가 승부를 예측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승부가 결정되려면 아직도 많은 수가 남아 있는데도, 그때까지의 상황을 반영하여 누가 얼마나 유리한지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수치, 저 기준은 무엇일까,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이 엉뚱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푸는 기계를 발명해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질문만 한 것이 아니라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테스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튜링 테스트는 판정관이 벽 너머의 상대방과 5분간 문자대화를 나눠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사람으로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30%를 넘으면 생각하는 기계로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습니다.

지난 68년 동안 이 방법은 ‘생각하는 기계’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이견 없이 받아들여져 왔는데, 테스트를 통과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지금까지 이 테스트를 통과한 기계는 없었습니다.

최근 미 MIT와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진이 아주 간단한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미니멀 튜링 테스트’인데, 하나의 단어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로봇에게는 어렵고, 인간은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를 골라내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은 그런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실험참가자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심판관 앞에 당신과 똑똑한 로봇이 함께 서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심판관을 볼 수는 없습니다.

심판관은 둘 중 누가 사람인지 가려낼 것입니다. 심판관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살 것이고,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죽을 것입니다.

당신과 로봇은 둘 다 살고 싶어 합니다. 심판관은 공정하고 똑똑합니다. 심판관이 말합니다. ‘사전에서 한 단어를 골라 제출하십시오.

이 단어에 근거해 누가 사람인지 판단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입니까?”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 한 개의 단어를 고르라는 얘기입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발한 질문 아닌지요? 대답이 궁금해지는데,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사랑’이었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발전한다 하여도 기계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일종의 안도감으로 와 닿으면서도,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결국 우리는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로도 다가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