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by 한희철 목사 2019.02.13

저는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책상만 보아도 대개는 어수선합니다.여기저기 책들이 널려 있고, 몇 가지 문구류와 서류나 공문 등 책상 위는 늘 어지럽지요.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청소를 할 때가 있습니다.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고, 서류나 공문을 항목별로 정돈하고, 문구류를 제자리에 보관하면 책상은 마치 오랜만에 이발이라도 한 것처럼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책상 위는 도로 어수선해집니다.

그런 일은 책상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이사를 하며 보니 왜 그리 짐이 많던지요? 10년 넘게 한 집에서 살다 보니 쌓이는 것이 많았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들, 무슨 이유로 이런 것들을 여태까지 끼고 살았을까 싶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마음에 닿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책으로, 일본에서 정리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곤도 마리에가 쓴 책이었습니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 관심이 갔던 것은 정리 정돈을 하는 방법이나 수납하는 요령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겨졌습니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를 의미한다는 말이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은 수납이었습니다.

버리기가 정리의 첫 번째 원칙이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 신선했습니다.
버리는 데도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다 여겨졌던 것은 버릴 땐 가족한테도 절대 들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에게 들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아까운 걸 왜 버려?” “이건 내가 쓸게.” 생각해 보니 듣기도 많이 하고 하기도 많이 한 말이었습니다.

버리기와 관련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책 제목이 되었는데, 바로 설렘이었습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건은 남편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만졌을 때 설렘이 없다면 과감하게 버리라는 것이었지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은 단지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둘러보면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대추나무에 연 걸린 것처럼 수많은 일들과 관계들이 얽혀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마음 다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과 얽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설렘이 없는 일과 만남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원하거든 쓰러지도록 소유하라/ 우린 버리고 가리라/ 적은 것을 사랑하며/ 부득이한 것만을 한 손에 움켜쥐고’ 마음에 두고 있는 테르스 테겐의 시 한 구절이 절로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