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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물 흐르듯

by 이규섭 시인 2019.03.22

그곳을 여행자들은 ‘요정의 숲’이라 부른다. 관광 가이드 책자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천혜의 비경’이라 소개한다.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을 둘러보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면적은 3만 ha로 넓다. 제대로 보려면 3일은 걸린다.

비수기에 당일치기 관광이라 욕심부리지 않고 상·하부 호수를 둘러본 뒤 유람선을 타는 2시간 30분 코스를 선택했다.

입장권 체크를 받은 뒤 5분 정도 들어가니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거대한 폭포가 다단계로 쏟아진다. 90여 개의 폭포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는 폭포다. 출발부터 기를 꺾는다.

폭포수가 천인단애에서 뛰어내려 숨 고르기를 한 뒤 고인 웅덩이는 청록색이다. 탄산칼슘을 다량으로 함유한 석회석 침전물이 빛의 굴절에 따라 푸른색, 회색, 녹색 등 다양한 빛깔을 연출한다.

선글라스를 낀 채 사진 찍기에 바쁜 한국인 관광객에게 “선글라스를 끼면 물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잖아요” 한마디 했더니 “아, 참 그렇군요”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오히려 고맙다.

트레킹 코스는 나무 위주로 만들어 친환경적 일뿐 아니라 걷기 편하다.

흙길도 만나고 돌계단도 있지만 힘들지 않다. 표지판을 따라가면 크고 작은 호수와 여러 갈레로 흘러내리는 수많은 폭포를 만난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수엔 송어가 무리 지어 헤엄치고 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닐어 지루할 틈이 없다. 호수마다 이름과 넓이, 수심의 깊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친절하다.

지치기 쉬울 때쯤 선착장 부근 휴게소와 레스토랑을 만난다. 음료수 한 잔으로 갈증을 축인다. 공짜 화장실 이용이 반갑다.

유람선을 기다리며 공놀이하는 현지 고등학생들의 모습에 활력이 넘친다. 유람선에서는 한국인 관광객과 사진을 찍으며 단체로 환호하는 모습이 싱그럽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넓고 푸르다. 양쪽 숲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작은 폭포가 호수로 흘러든다.

플리트비체는 1949년 크로아티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수천 년에 걸쳐 물이 흐르며 쌓인 석회와 백악의 자연 댐이 크고 작은 16개의 호수를 만들어 대자연의 향연을 펼쳐 놓았다.

호수의 상징 동물인 갈색 곰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 1200여 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1979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한 해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 이상 찾는 플리트비체는 정책의 최우선을 개발 보다 환경보호에 역점을 두고 관리한다.

안내판과 입장권에는 빨간색으로 엄격하게 금지하는 행위 15개가 그림과 함께 적혀 있다. 취사와 낚시는 물론 물에 들어가거나 드론으로 사진 촬영을 해서도 안 된다.

유람선은 전기로 움직인다. 쓰러진 나뭇등걸도 그대로 물속에 둔다. 미래를 생각하여 관람객 수를 조절한다.

물은 순리를 안다. 흐르다 큰 바위를 만나면 휘돌아가거나 포말로 부서졌다가 다시 흘러 바다에 이른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맑은 물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세상살이도 물 흐르듯 순리를 거스르지 않아야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