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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아라[방하착]”

“내려놓아라[방하착]”

by 정운 스님 2019.03.26

당나라 때, 스님으로 120세까지 사신 분이 있다. 조주 종심(778~897)스님인데, 선사로서 후대에 공안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원오 극근(1063~1135)스님이 조주의 가풍에 대해 ‘입술에서 빛이 난다.’고 할 정도로 조주스님의 언변은 기봉이 날카로웠고, 문답에는 깊이와 사상이 담겨 있다.

조주스님에게는 여러 선문답[참선하는 스님들이 주고 받는 대화]이 많다. ‘정전백수자’ㆍ‘끽다거’ㆍ‘무자’ㆍ‘세발우洗鉢盂’ㆍ‘조주감파趙州勘婆’ 등 수많은 일화가 후대에 공안으로 유통되고 있다. 조주의 다양한 선문답 가운데 ‘방하착[放下着]’이 있다. 즉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어느 한 수행자가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공안이라 구구절절하게 언급하는 것이 선사들에게 죄송한 일이지만, 한 번쯤 의미를 되새겨보자. 물건을 내려놓는 것도 있겠지만 대체로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는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다. 동물들은 배가 고플 때 사나워지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아무리 사나운 동물도 마음이 평화롭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음식을 비축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만이 늘 쌓아놓고,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또 다른 것을 원한다.

물론 긍정적인 자기개발의 욕심은 얼마든지 부려도 된다. 만물의 영장이요, 이성을 갖고 있다고 하는 인간들이 ‘마음’이라는 밭에 ‘욕망’의 씨앗을 뿌리고 배양분을 잘 섞어 줄기를 키워나가며 탐욕의 열매까지 맺는다.

예수님 말씀에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였다. 일그러진 욕망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자는 그 욕망으로 반드시 추락하는 법이다.

근자에도 자! 그러니 불필요한 욕심, 그것을 내려놓자. 아니 잘 안되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내려놓으려는 마음이라도 가져보자.

둘째, 집착과 편견, 자신의 관념이 옳다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들과 다툼이 있을 때는 그 밑바닥에 자신에 대한 관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곧 자신만의 아집과 아상으로 똘똘 뭉쳐 있다. 내 것만이 옳고, 내 것만이 최고라는 관념이 있으므로 타인의 생각이나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타협보고 양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서로 타협보고 양보하는 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극명하게 사람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의 아집과 관념을 내려놓자.

셋째, 걱정을 내려놓자. 지나 버린 과거에 대한 회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 이뤄질 수 없는 일에 조바심 내는 등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산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자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삶이 절대 녹록지 않다. 인간답게 사는 것, 바르게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욕심내고 있으면서 욕심내는 것을 알고, 편견을 갖고 있으면서 편견 있음을 알고 내려놓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좀 더 인생이 수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