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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봄이라니!

아, 봄이라니!

by 권영상 작가 2019.04.04

아파트 마당으로 봄이 들어왔다. 살구꽃이 피고, 목련이 피기 직전이다.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보니 조그마한 트럭이 봄을 잔뜩 싣고 와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봄이 노랑꽃 팬지다.나비 모양의 앙증맞은 팬지꽃, 들여다볼수록 예쁘다. 그 옆에 프리뮬러 튤립 아네모네 새우란 영산홍. 내가 아는 봄 이름이 그렇다. 아니 데이지도 있고 철쭉도 있다.

이 노란 봄은 마치 초등학교 교문 근처에서 병아리로 초등학교 아이들을 유혹하듯 길거리 어른들을 유혹했다.

나만이 아닌 몇몇 사람들이 길을 멈추고 그 노란 봄 앞을 기웃거렸다. 호사스럽게 돌아온 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머니를 뒤적여 팬지 화분 두 개를 사들었다.

이걸 집에 가져가면 집에서 봄 냄새가 날 것 같고, 내 말씨가 달라지고, 옷차림이 금방 바뀌고, 내 무거운 마음이 둥실 떠오를 것 같았다.

지난겨울은 정말 힘들었다. 여느 겨울에 비해 그리 춥거나 혹독하지 않았는데도 독감에 걸려 한 달 동안 길고 긴 감기 치레를 했다.

적당한 찬물에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해도 걸리지 않던 감기였다. 아마도 일몰 무렵의 태화강 댓숲길을 걷다가 쐰 강바람이 원인이었을 것 같았다.

간신히 독감에서 벗어날 무렵이다. 이번에는 손바닥이 아픈 손목증후군이 나타났다. 한방의원에 들러 내 손바닥을 보이자, 한의사라는 이는 내 손엔 관심이 없고, 뜬금없는 소리만 했다.

심장질환이 보인다느니, 고혈압, 척추관 협착증, 전립선 비대증을 운운하며 ‘약’을 먹으라고 한사코 권했다.

그때는 그럴 리 없다며 침 서너 대를 맞고 당당히 한의원을 나섰지만 나와서 생각하니 그이가 한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이를 보고 병을 넘겨짚은 거야. 사람이 없으니.”

아내는 나를 위로했다. 내 몸 건강에 대해 별로 의심한 적 없는 나였는데도 괜히 마음이 불편해 여기저기 병원을 들락였다.

그러느라 겨울은 길기만 했고, 어둡고 음침했으며, 활력을 잃었고, 생각은 앞으로 나가기 보다 자꾸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내심 어서 봄이 오기를 고대했다. 이 음울한 분위기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봄만이 나를 컴컴한 어둠 속에서 밝은 빛 속으로 이끌어내어 줄 것 같았다.

예전 어른들이 마을 느티나무에 봄이 오길 기다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봄이 오기 시작하면 추위에서 벗어나는 대지는 점점 더운 기운 띤다. 그때에야 비로소 몸 안에 차 있던 컴컴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에 생강나무 꽃이 피고, 남쪽 매화 꽃소식이 마구 들려올 때 안성으로 내려갔다.

마른 꽃대와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고, 거름을 펴고 작은 땅이지만 삽으로 밭을 뒤집었다. 그리고 감자씨를 구해 심고, 잘 보관했던 토란을 심고, 꽃씨 온상을 했다.

아, 봄이라니!

나는 홀로 소리쳤다. 수돗물에 흙 묻은 삽을 씻으려니 몸이 열에 감염된 것처럼 더워진다. 겉옷을 벗고 씻은 삽을 다시 집어 들고 부추 씨앗 뿌릴 자리를 만들었다.

저녁엔 함께 데리고 온 팬지꽃 화분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마주 바라보며 정답게 밥을 먹었다. 비로소 긴 겨울에서 벗어난 듯 내 몸이 가벼워진다.

이제 또 시작이다! 요렇게 작은 팬지꽃에게 나는 내 4월의 봄 계획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