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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과 미래 한국

식물원과 미래 한국

by 강판권 교수 2019.06.03

식물원은 선진사회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식물원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전국에서 크고 작은 식물원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전국 수목원 통계를 보면 경기도에 9곳, 전라도에 6곳, 강원도에 2곳, 충청도에 4곳, 경상도에 4곳, 제주도에 2곳 등이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목원도 적지 않다. 최근에 개장한 식물원 중에는 서울식물원을 들 수 있다.

나는 아직 우리나라 식물원을 많이 찾지 못했지만 식물원마다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식물원은 아직 양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전에 근대식물원이 등장했다.

일본 교토대학교 부설 고이시카와 식물원은 일본 최초의 근대식물원이다. 나는 오래전에 이곳 식물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식물원답게 나무도 아주 다양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조용했다. 그래서 즐겁게 식물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이곳 식물원을 찾은 것은 이곳의 은행나무 암 그루에서 세계 처음으로 은행나무의 정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식물원은 연구목적을 띠고 있다.

나는 닛코에 위치한 오이시카와 식물원 분원에도 찾아갔다. 그곳 역시 아주 조용했을 뿐 아니라 연구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두 곳 모두 이름표를 갖추고 있어서 관람하는 데도 아주 유익했다.

식물원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전히 바뀌지 않은 부분은 식물을 본초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식물을 꽃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도 전근대적인 식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증거다.

이 같은 현상은 식물원을 운영하는 사람과 찾는 사람 모두의 책임이다. 현재 우리나라 식물원이 본초학 중심의 봉건성에서 벗어나 근대성을 갖추려면 식물원에 대한 철학이 절실하다.

전국의 유명 식물원에 가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은 방문객들로 넘친다. 그러나 식물원은 마치 놀이공원처럼 시끄럽다.

그래서 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식물원의 주인공은 식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물원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원은 사람을 많이 수용하는데 급급할 뿐 식물의 삶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식물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식물원 경영자는 식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현상은 국공립과 사립 관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1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식물원을 찾았는지를 통계해서 지원을 결정하는 아주 이상한 구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라야 한국의 미래가 밝다. 식물을 사람의 미래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단계가 바로 선진사회다.

식물을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사람에 대한 사고가 아주 깊다는 뜻이다. 식물이 사람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만 이해해도 식물원의 운영은 한층 나은 단계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