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천의 얼굴 천의 웃음

천의 얼굴 천의 웃음

by 김재은 작가 2019.06.18

오늘 하루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만약 거울 하나가 내 앞에서 나를 끌면서 하루 동안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내 모습은 어떠할까. 나에게 저런 모습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때론 소름이 돋고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란 온갖 감정으로 뒤엉킨 존재이기에 오만가지 모습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 모습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그 사람만의 삶의 산물이기에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고 때론 짠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그대로 삶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대수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나의 모습이 단지 나로서 끝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하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좀 그렇다. 한순간에도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오감이 작동하니 내 모습 또한 바람에 끝없이 흔들리는 풀잎처럼 변화무쌍하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멋진 분의 초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한 전시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회가 그것이다.
2001년 작업 중 발견되어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사람 얼굴 형상의 석불들이다.
불교에서 ‘수행정진으로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나한(아라한의 줄임말)이라 부른다.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돌에 새겨진 나한의 얼굴이 바로 우리 장삼이사, 필부필부들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친숙한 이웃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울고 웃고 입술을 꽉 다물고 수줍고 슬픈 표정도 짓는다. 오백나한상의 웃음은 아이들같이 천진무구한 해맑고 천진한 그것들이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의 웃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되는 바로 우리들의 웃음이며 일상적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표정들이다.

나한들의 다양한 모습, 특히 웃는 모습을 살펴보니 웃음에도 다양한 천의 얼굴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몰려왔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희노애락의 인생살이로 인한 천의 얼굴뿐 아니라 웃는 얼굴 하나에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아니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웃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나만의 모습으로 웃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맙고 놀라운 일인가.

80억 가까운 지구별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특별한 모습이 있고, 삶의 사연과 상황이 다르기에
때론 상을 찡그리고 무덤덤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나한의 웃는 얼굴을 보니 어쩌면 바로 저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저 석불을 조성한 석공들 자신의 웃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들의 살짝 웃는 모습에 나 또한 절로 미소를 띠었듯이 누군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보기 좋은 광경이 어디 있을까.

수많은 나한들이 미소로 말하고 있듯이 얼굴을 활짝 펴고 나만의 웃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펴야 하는 것은 낙하산만이 아니다.

얼굴을 펴고 웃으면 표면적이 커져 세상의 복이 마구마구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찡그리면 바가지를 엎어놓은 형상이라 복이 흘러내리지만 웃으면 바가지에 복이 마구마구 담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의 웃음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돌고 돌아 세상이 웃음판이 되지 않을까. 웃음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니까. 오백나한이 수백 년 세월 동안 묻혀있다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자신만의 미소를 당당하게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