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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넘으면 안 된다고?”

“75세 넘으면 안 된다고?”

by 이규섭 시인 2019.07.26

옛날에도 렌털(rental)은 있었다. 한양의 옷 가게 의전(衣廛)은 부대사업으로 결혼식 때 신랑이 입는 예복을 빌려줬다.결혼식 때 잠시 사용하는 것을 새로 사거나 집에서 만들기가 만만찮아 빌려 입는 게 실효성이 높았다.

신부 장식품은 ‘화장시켜주는 할머니’ 장파(粧婆)에게서 렌털하여 사용했다. 메이크업을 해주며 어여머리, 귀걸이, 반지, 비녀 등을 빌려줬다.

돈을 주고 말을 빌리는 세마(貰馬)도 요즘으로 치면 렌터카나 콜밴, 화물 용달과 비슷하다. 먼 길 갈 때 타거나 쌀과 나무 등을 운반할 때 이용했다.

소설을 베껴 빌려주는 ‘세책(貰冊)집’은 18세기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필사본을 빌려주는 책방이다.

하루 수십 권의 소설을 읽는 열독자가 나타났고 길거리와 시장에서는 소설책을 읽어주는 낭독자가 등장했다.

필사본 대여는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남자들은 술판과 도박판 활터 등 즐길 거리가 많았지만 여성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독서가 낙이다.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 패물을 팔아 책을 빌려 보거나 베 짜기 등 가사에 소홀했다는 기록도 있다.

얼마 전까지 동네마다 있었던 도서대여점에서 소설책과 만화를 빌려 보았으나 요즘은 가까운 도서관에서 손쉽게 빌릴 수 있다.

한 때 ‘영화 보급소’로 통하던 비디오테이프-DVD 대여점은 ‘그 시절을 아십니까’ 추억 속 풍경이 됐다.

최신작 비디오는 대기 순서를 기다렸다. 반납하라는 가게 주인의 독촉 전화를 받거나 깜빡 잊고 반납이 늦어 연체료를 물었다. 반납할 때 비디오테이프를 원상으로 감았는지 확인했다.

요즘은 렌털 없이 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목돈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제품을 빌려 쓸 수 있는 편의성 때문이다.

나홀로 가구와 노인 인구가 늘면서 렌털 제품은 정수기, 안마 의자, 가전제품, 침대, 건조기, 세탁기, 공기청정기, 스키 장비 등 다양해졌다.

칠십대 후반의 지인은 얼마 전 음식물처리기를 렌털하려고 대여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음식물처리기는 건조방식, 미생물방식, 파쇄 분쇄방식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장단점과 가격대를 친절하게 상담해줬다. 음식 조리보다 귀찮은 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다.

가격대가 만만찮아 구입하기보다 빌려 쓰려 맘먹었다고 한다. 계약을 진행하려 하자 “75세 넘었으면 신청이 안 된다”하여 황당했다는 것.

나이 들어 홀대받는 것이 렌털 뿐이겠느냐고 위로했지만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음식물처리기와 안마 의자, 공기청정기는 나이 든 사람이 더 필요하다.

노인층 외면은 렌털 시장의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중개 업체는 고객 유치 대가로 본사로부터 수당을 받는다.

설치비와 가입비, 상품권 등 수당의 65∼70%는 계약과 동시에 받고 나머지는 1년 정도 회원이 유지돼야 받을 수 있어 고령층을 꺼린다.

사은품 제공 때 제휴 관계인 금융권도 리스크를 줄이려 중개 업체에 고령층 가입 제한을 요구한다.

나이를 제한하는 불공정성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공정하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