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

by 한희철 목사 2020.01.08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은 ‘말’(言)이라는 뜻도 있고, 말(馬)이라는 뜻도 있어, 속담이 주는 재미를 더합니다.‘말’(言)에는 말(馬)처럼 발이 없어도 사방으로, 어쩌면 말(馬)보다도 더 빨리 달려가니 말입니다.

그런데 발 없는 말에도 속도가 있습니다. 어떤 말은 빠르고 어떤 말은 느립니다.

말과 관련된 속담 중에는 ‘나쁜 소문은 날아가고, 좋은 소문은 기어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나쁜 소문은 더 빨리 번지고 좋은 소문은 더디 번진다는 뜻입니다.

가짜 뉴스는 갈수록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가 되고 있는데, SNS가 대중화되면서 소문 형태로 퍼지는 경우가 많아 가짜 뉴스를 구별해내고 차단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쁜 소문은 날아가고, 좋은 소문은 기어간다.’는 속담을 실제로 증명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아랄 미 MIT 경영대학원 교수가 가짜 뉴스의 전파 속도를 실증 분석한 것입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트위터에서 많은 가짜 뉴스가 오가는 것에 놀라 시작한 연구였습니다.

트윗 450만여 건을 분석해 보니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가는 속도가 진짜 뉴스보다 약 6배 빨랐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일까요? 아랄 교수는 ‘참신함의 가설’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인간의 주의력은 새로운 것에 끌리는데, 상당수의 가짜 뉴스가 새롭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가 갖는 새로움은 대부분 놀라움과 분노로 이어지게 되고,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자꾸만 공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가 빠르게 전파된다는 것은 결국 놀라움과 분노가 그만큼 빨리 확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을 보여주는 일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아랄 교수에 의하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의 27%가 러시아발 가짜 뉴스에 노출됐고, 페이스북에서만 약 2억2600만이 거짓 게시물을 보았다고 합니다.

가짜 뉴스의 해악은 정보 격차가 심한 개발도상국일수록 더욱 크다고 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2018년 쓰나미 피해 복구 과정에서 '진도 8.1 강진이 뒤이어 온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습니다.

그 가짜 뉴스를 접한 많은 이재민들은 집에 갈 수 있는데도 수개월 동안 겁에 질려 노숙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선 한 교사가 원주민 학생을 원숭이라 불렀다는 가짜 뉴스가 번졌는데,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3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도의 작은 마을 라인파다의 주민들은 ‘괴한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장기 매매를 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관광객 다섯 명을 때려죽이기도 했습니다.

나쁜 소문이 좋은 소문보다 빨리 번져간다면, 나쁜 소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올바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을 부지중에 무너뜨리는 나쁜 소문에 속도를 보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