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인사
나무의 인사
by 운영자 2011.11.16
당시에는 엄청난 일이라 여겼지만 어느 샌가 잊히고 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작고 사소했던 일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일도 어느 순간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닐 줄 알았던 일이 마음에 남아 때마다 떠오를 때가 있지요.
남는 일과 사라지는 일,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성지교회로 부임하여 한 일 중 마음에 남아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아주 작은 일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살린 일이 있었습니다. 곳곳에 나무가 흔하니 작은 나무 한 그루 살린 것이 무엇 대수롭겠습니까.
내가 일하는 방으로 가다보면 한쪽 구석 응달진 곳 담벼락 옆에서 자라는 감나무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른 키를 훌쩍 넘었지만,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는 내 허리춤에 닿는 작은 나무였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면서 보니 바로 그 감나무 아랫부분에 비닐 노끈이 묶여 있었는데, 얼마나 강하게 묶었는지 비닐이 나무를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어린 나무 밑동을 안으로 파고드는 비닐 노끈이 안쓰러워 가위를 가져와선 일일이 잘라냈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나무 안에 박혀 있어 힘을 주어 빼내야 했습니다.
비닐을 모두 잘라냈을 때 나무는 비로소 “후!” 하며 그동안 막혔던 숨을 내쉬는 것 같았습니다.
멈춰 있던 피가 통하듯 그제야 수액이 다시 도는 것도 같았습니다.
막 자랄 무렵 비닐로 상처로 입은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나무는 잘 자라났습니다.
어느새 키도 쑥 컸고, 지난해 처음으로 감 몇 개를 달더니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굵고 더 많은 감을 매달았습니다.
올해의 감나무는 유난스럽습니다. 감나무 잎사귀 가 얼마나 예쁘게 물들었는지 모릅니다.
붉고 노란 기운이 잘 섞여 은은하면서도 눈이 부십니다. 내 방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앞에 서 있기에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는데, 때마다 나는 감탄을 합니다.
나뭇잎에 물든 눈부신 빛깔이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를 물들이곤 합니다.
감나무에 햇살이 비치면 나무가 꽃등을 켜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의 지문인지 햇살의 지문인지가 잎사귀마다 찍힙니다. 등불 아래 드러나는 선명한 표지, 생명의 지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은은한 그 빛깔에 반해 몇 번을 카메라를 들고 나섰지만 내가 본 느낌을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기계의 한계일 수도 있고, 기계를 다루는 내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말로 하려는 듯한 한계를 느낍니다.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감탄할 때마다 나무는 내게 말을 겁니다.
“그 때 고마웠습니다. 제게 준 그 손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받으려 한 일 아니었고, 나는 내가 한 일을 벌써 잊고 있었지만 나무는 붉은 나뭇잎으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눈부신 웃음, 만약 그 때 그 일에 대한 인사라면 붉게 물든 나뭇잎 하나만으로도 나는 족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온통 붉은 나뭇잎으로 고맙다 인사를 하니 나는 이 가을 넘치는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준 작은 손길 하나를 기억하는 나무의 인사가 참으로 과분합니다.
한희철 목사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일도 어느 순간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닐 줄 알았던 일이 마음에 남아 때마다 떠오를 때가 있지요.
남는 일과 사라지는 일,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성지교회로 부임하여 한 일 중 마음에 남아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아주 작은 일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살린 일이 있었습니다. 곳곳에 나무가 흔하니 작은 나무 한 그루 살린 것이 무엇 대수롭겠습니까.
내가 일하는 방으로 가다보면 한쪽 구석 응달진 곳 담벼락 옆에서 자라는 감나무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른 키를 훌쩍 넘었지만,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는 내 허리춤에 닿는 작은 나무였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면서 보니 바로 그 감나무 아랫부분에 비닐 노끈이 묶여 있었는데, 얼마나 강하게 묶었는지 비닐이 나무를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어린 나무 밑동을 안으로 파고드는 비닐 노끈이 안쓰러워 가위를 가져와선 일일이 잘라냈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나무 안에 박혀 있어 힘을 주어 빼내야 했습니다.
비닐을 모두 잘라냈을 때 나무는 비로소 “후!” 하며 그동안 막혔던 숨을 내쉬는 것 같았습니다.
멈춰 있던 피가 통하듯 그제야 수액이 다시 도는 것도 같았습니다.
막 자랄 무렵 비닐로 상처로 입은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나무는 잘 자라났습니다.
어느새 키도 쑥 컸고, 지난해 처음으로 감 몇 개를 달더니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굵고 더 많은 감을 매달았습니다.
올해의 감나무는 유난스럽습니다. 감나무 잎사귀 가 얼마나 예쁘게 물들었는지 모릅니다.
붉고 노란 기운이 잘 섞여 은은하면서도 눈이 부십니다. 내 방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앞에 서 있기에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는데, 때마다 나는 감탄을 합니다.
나뭇잎에 물든 눈부신 빛깔이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를 물들이곤 합니다.
감나무에 햇살이 비치면 나무가 꽃등을 켜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의 지문인지 햇살의 지문인지가 잎사귀마다 찍힙니다. 등불 아래 드러나는 선명한 표지, 생명의 지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은은한 그 빛깔에 반해 몇 번을 카메라를 들고 나섰지만 내가 본 느낌을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기계의 한계일 수도 있고, 기계를 다루는 내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말로 하려는 듯한 한계를 느낍니다.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감탄할 때마다 나무는 내게 말을 겁니다.
“그 때 고마웠습니다. 제게 준 그 손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받으려 한 일 아니었고, 나는 내가 한 일을 벌써 잊고 있었지만 나무는 붉은 나뭇잎으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눈부신 웃음, 만약 그 때 그 일에 대한 인사라면 붉게 물든 나뭇잎 하나만으로도 나는 족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온통 붉은 나뭇잎으로 고맙다 인사를 하니 나는 이 가을 넘치는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준 작은 손길 하나를 기억하는 나무의 인사가 참으로 과분합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