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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도 못한 남편

개만도 못한 남편

by 운영자 2012.01.13

지난 연초 늦은 시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시선이 꽂혔다. 남편보다 개를 더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고민이라는 ‘개만도 못한 남편’ 사연이 공개됐다.

아내가 개들에게 투자한 돈이 2천만원이라면서 40만원 상당의 럭셔리 개 침대, 개 유모차, 유기농 사료 등 최고급 애완용품을 소개했다.

그는 결혼 2년째 주말부부로 “애완견들 때문에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며 “아이를 갖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아내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살다보니 우울증이 와서 개를 키우기 시작했으며 불의의 사고로 죽은 개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져 애견들에 더 애정을 쏟아 붓게 됐다”고 해명한다.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소한 이야기부터 말 못할 고민까지 웃음과 감동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문다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가정의 시시콜콜한 치부까지 드러내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짜증과 불쾌감을 준다.

하긴 요즘은 개 팔자가 상팔자다.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애견유치원에 등교하여 배변운동과 놀이를 통한 사회학을 배운다. 점심과 간식, 낮잠 시간이 포함된 것도 일반 유치원과 다름없다. 첨단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휴가철엔 동물호텔에서 호사를 누린다.

은퇴한 남자들이 모이는 사석에서 아내에게 개 보다 못한 홀대를 받는다는 농담을 하며 웃는다. 어쩌다 며칠 간 집을 떠나 전화를 걸 때도 “강아지 밥 줬어?”하고 멋쩍게 개 안부를 먼저 묻는다고 한다.

은퇴부부는 배우자의 개인생활에 무관심해지는 것도 갈등을 줄이는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직장중심으로 돌아가던 생활공간과 사회적 인간관계가 가정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아내의 내조에 의지하게 되는 게 ‘철없는 남편’들이다.

그래서 생긴 우스개가 남편이 필요한 다섯 가지는 마누라, 부인, 와이프, 배우자, 아내다. 아내의 입장은 다르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 겨를도 없었는 데, 늙어가면서 은퇴한 남편과 놀아줘야 하고, 세 끼 신경 써 차려줘야 하고, 기분도 맞춰줘야 하니 악처가 아니라도 귀찮다.

매일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공포의 거실남’, 온종일 잠옷 차림에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귀 쫑긋 세우고 엿듣는 ‘파자마맨’, 어딜 가나 따라오는 ‘정년(停年)미아’의 남편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자가 필요한 다섯 가지는 친정 엄마 챙겨주는 딸과 꼬리치며 반기는 개와,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와 건강과 돈이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