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랑이라면

사랑이라면

by 운영자 2012.01.18

흉도 자랑도 아니다 싶지만, 이제까지 드라마를 끝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관심을 끌게 하는 드라마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렇게 저렇게 다른 일과 겹쳐 시간을 놓치고 나면 다시 이어 보는 것이 쉽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도 드라마 속에 시대상이 담기지 싶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드라마의 줄거리 정도를 귀동냥으로 얼추 알고 넘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하나를 보는데도 적지 않은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중에 요즘 한 가지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드라마 끝까지 보기에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뿌리 깊은 나무’라는, 지금은 다 끝이 난 드라마를 아들과 함께 앉아 한 회 한 회 재미있게 집중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 관심이 갔던 것은 그 내용이 한글 창제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부터입니다. 나 또한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글과 관련,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것은 평소에도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 고수의 칼솜씨 등 눈요기 감도 적지 않고, 사람 사이에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감정과 만남,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사건 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극적인 반전이 이어지고는 했습니다.

드라마에는 또 다시 시간을 기다려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묘한 힘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 중 마음이 갔던 것은 세종의 고뇌였습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왕에게 왜 고뇌가 없을까만 한글을 만드는 일과 관련한 세종의 고뇌는 참으로 크고도 깊었습니다. 한글을 만들고자 하는 세종의 마음을 주변의 신하들은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자체를 몹시 위험한 발상으로 여깁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말이지요.

모두의 관심과 격려와 칭찬 속에 한글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한글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세종은 시작부터 넘기 힘든 큰 벽 앞에 서야 했습니다.

백성들이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그리고 그것이 백성들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데, 세종을 도와 힘이 되어야 할 대신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반대를 하니 그런 벽을 넘기가 어찌 쉬웠을까 싶습니다.

왕의 자리에 편안하게 머물며 그 자리를 즐기고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전념하는 대신 백성들을 위하여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려는 세종과, 한글이 가진 위력을 알고 한글이 반포되면 자신이 꿈꾸던 기반을 송두리째 잃고 만다는 것을 깨닫고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밀본의 정기준은 서로 대치점에 서 있습니다.

한글을 만들려는 진짜 이유가 백성들의 불행을 백성들에게 떠넘기기 위함 아니냐는 정기준의 독기 어린 일갈에 세종은 몹시 괴로워하며 한글을 만들려 하는 자신의 진짜 동기를 돌아보고 또 돌아봅니다.

그런 세종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의 동기가 사랑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동기가 사랑이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