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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손맛 같은 설이 그립다.

어머니 손맛 같은 설이 그립다.

by 운영자 2012.01.20

이제는 ‘e-설이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이 설 풍속도를 바꿔 놓았다. 차례상 인터넷 주문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맞벌이로 바쁘거나 따로 사는 며느리에게 음식준비를 시키는 것도 눈치 보이고 팔을 걷어붙이고 하려는 며느리도 드물다.

신세대들이 차리는 차례상은 전례의 전통 음식보다 아이들 입맛 위주로 바뀌었다. 소고기 산적 대신 떡갈비를 만들고 숙주나물은 샐러드로 변신한다.

다문화가정이 늘다보니 필리핀 잡채에 티베트 만두 등 다국적 퓨전 음식이 차례상에 오르는 세상이 됐다. 한복 입는 법이나 차례상 차리는 법, 세배하는 법이 헷갈릴 땐 인터넷 UCC를 검색하여 간단하게 해결한다.

어려운 한자로 지방(紙榜)을 쓰는 대신 사진을 놓는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차례를 지낸 뒤 실버타운에 입주하거나 요양병원에 입원한 부모를 찾는 사례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e-편한 세상’이지만 고유의 설 풍속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 예전의 설은 어머니의 손길에서 나왔다.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 밤새도록 자지 않고 /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 / 밖에는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김종해 시 ‘어머니와 설날’ 중에서)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차례 때 쓸 놋그릇을 닦았다. 흙으로 빚은 기와를 잘게 부슨 가루를 짚수세미에 묻혀 닦으면 윤기가 반짝반짝 거울처럼 빛났다.

묵은 빨래는 물론 집 안팎을 말끔히 청소하는 손길에 경건함이 묻어났다. 저녁이면 빳빳하게 풀 먹인 두루마기에 동전을 달며 설빔을 준비했고 설날 아침이면 머리맡에 포르말린 냄새 솔솔 풍기는 새 옷을 가지런히 챙겨 놓았다.

섣달 그믐날이면 솥 두껑을 뒤집어 놓고 전을 부치고, 고사리, 콩나물 등 나물을 삶으며 제수 준비에 손길이 바빴다. 떡과 산적, 식혜와 조청, 한과는 어머니의 손맛에서 나왔다.

입안에 감돌던 달착지근한 식혜의 향기와 말랑말랑한 떡가래를 가마솥에 고아낸 조청에 찍어 먹던 달고 쫄깃쫄깃한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행주치마에 서린 어머니의 냄새 같은 그 때 그 시절의 설이 그립다. 가난했을망정 그 시절엔 마음은 풍성했고 인정은 넘쳤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끈끈한 가족애를 확인하는 게 명절 차례의 의미다. 아이들에게는 친척의 의미와 촌수가 무엇이지를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차례상을 물린 뒤 어른 들게 큰절을 하면서 만수무강을 기원했고, 어른들은 덕담으로 삶의 지혜를 전했다. 요즘은 “올해는 결혼해야지”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지”하는 덕담도 스트레스 받을 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예전에 밥상머리에서 예의범절을 터득했다. 어른들이 수저를 든 뒤 수저를 들어야하고, 맛있는 반찬만 먹거나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숭늉은 물론 찬물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호칭이 아빠로 변하고 “아버지 진지드세요”가 “아빠 식사 하세요”로 바뀌면서 가장의 권위는 무너졌고, 기본적의 예의마저 사라졌다. 세월이 변해도 고유의 미풍양속은 민족의 명절과 함께 면면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