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재능기부의 싹이 돋아나다!

재능기부의 싹이 돋아나다!

by 운영자 2012.01.26

시작은 참으로 즉흥적이었습니다. 지난 해 여름 지역치매지원센터가 방학을 하는 바람에 3주 동안 심심해하실 경증치매 어르신들을 위해 작은 교회에서 임시 노인대학을 열게 되었고, 사회복지사인 제가 총 아홉 번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실행한 것이 그 시작의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이 희미해져 갈 무렵인 지난 연말, 치매지원센터 수료식 이후에 어르신들이 가실만한 곳을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요양시설 입소 수준은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 노인복지관은 맞지 않고, 혼자 일상을 꾸려가기는 어렵지만 24시간 돌봐드려야 할 정도는 아니고, 이름이나 나이를 깜빡 잊곤 하지만 화장실을 알려드리면 혼자 용변을 보실 정도는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작은 교회의 재정으로는 주 1회 프로그램과 식사 제공이 가능한데, 문제는 프로그램의 내용이라고 막막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편인 저는 그날도 아무 대책 없이 상반기 6개월 동안 재능기부로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제가 속해 있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제발 6개월 동안 한 사람이 한 시간씩만 맡아서 어르신들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오가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반일 휴가를 내야하고, 대상 또한 경증치매 어르신들이라서 다들 고민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하나 둘 회원들이 나섰고, 비록 전체 일정을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1월초 노인대학을 개강해 진행 중입니다. 노인운동전문가인 40대 회원은 건강 체조를, 미술을 전공한 50대 후반 회원은 미술활동을 맡았습니다.

전업주부인 또 다른 회원은 요리시간을, 연극을 하는 회원은 어르신들의 성함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구성해보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사이코드라마 공부를 하고 있는 회원은 어르신들과 마음속의 한 장면을 만들어 보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 로봇 만들기 강사인 회원은 로봇을 가지고 와서 보여드리고 게임을 통해 재미와 사회성 증진을 도모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착한 씨앗이 들어있는 게 분명합니다. 일상에 쫓기다보니 돌볼 겨를도 없고 막상 꺼내려 해도 쑥스러움에 망설이지만, 해가 비치고 촉촉한 물기가 스며들면 자연스레 씨앗에 눈이 트고 싹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3월 이후의 재능기부 예약이 없어 속이 타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좋은 만남과 인연을 통해 사람들 마음 속 착한 씨앗이 여린 새싹으로 돋아나 어르신들과 함께 울고 웃을 거라고요.

그나저나 저는 노인대학에서 무슨 재능기부를 하냐고요? 특별한 재주가 없는 저는 6개월 동안 설거지를 도맡아하기로 약속했답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