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낭비
행복한 낭비
by 운영자 2012.01.30
지금 세계 경제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촌의 미래를 논하는 다보스포럼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 화두는 자본주의의 실패입니다.
특히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낙오자를 껴안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죄를 지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보스포럼에서 다루는 거창한 주제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소득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대개 보람된 일보다 자신의 안락을 위해 돈을 펑펑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백화점에 갔다가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명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명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쌀수록 더 잘 팔리기 때문에 가격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사치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누군가 오늘날 세계 최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아닙니다. 소위 “지름신” 을 섬기는 소비주의라고 합니다.
현란한 TV 광고들을 보면 “소비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니" 마치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왕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누구나 소비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비를 해야 생산이 원활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서 균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 때도 내뱉어야 들이쉴 수 있는 법이지요. 진정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면 균형 잡힌 소비를 해야 합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서도 소비할 때 균형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균형을 통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말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수준은 높아졌지만 GDP 증가수준에 대비할 때 기부 수준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나만을 위한 소비” 라는 이기적 관성 때문이지요.
그래, “나만을 위한 소비” 로 더 행복해졌나요? 그래서 세상이 더 나아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득수준은 높아졌지만 행복감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난 아무런 도움 없이 성공했다!” “강한자만 살아남는다!” “이런 문제는 정부가 해결할 일이야!” 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낙오자를 배려하는 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낭비라고 여기는 생각이 은연중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흔히 불필요한 일에 헤프게 소비하는 것을 낭비라고 말합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돈과 재능을 소비하는 것을 굳이 낭비가 아니라고 고집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낭비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낭비입니다. 병든 자본주의를 고쳐주는 명약이기도 합니다. 다보스포럼에 참여한 저명한 분들이 본을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한 낭비에 더 많이 동참하길 기대합니다.
이성록 <박사>
특히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낙오자를 껴안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죄를 지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보스포럼에서 다루는 거창한 주제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소득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대개 보람된 일보다 자신의 안락을 위해 돈을 펑펑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백화점에 갔다가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명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명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쌀수록 더 잘 팔리기 때문에 가격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사치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누군가 오늘날 세계 최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아닙니다. 소위 “지름신” 을 섬기는 소비주의라고 합니다.
현란한 TV 광고들을 보면 “소비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니" 마치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왕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누구나 소비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비를 해야 생산이 원활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서 균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 때도 내뱉어야 들이쉴 수 있는 법이지요. 진정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면 균형 잡힌 소비를 해야 합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서도 소비할 때 균형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균형을 통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말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수준은 높아졌지만 GDP 증가수준에 대비할 때 기부 수준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나만을 위한 소비” 라는 이기적 관성 때문이지요.
그래, “나만을 위한 소비” 로 더 행복해졌나요? 그래서 세상이 더 나아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득수준은 높아졌지만 행복감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난 아무런 도움 없이 성공했다!” “강한자만 살아남는다!” “이런 문제는 정부가 해결할 일이야!” 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낙오자를 배려하는 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낭비라고 여기는 생각이 은연중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흔히 불필요한 일에 헤프게 소비하는 것을 낭비라고 말합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돈과 재능을 소비하는 것을 굳이 낭비가 아니라고 고집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낭비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낭비입니다. 병든 자본주의를 고쳐주는 명약이기도 합니다. 다보스포럼에 참여한 저명한 분들이 본을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한 낭비에 더 많이 동참하길 기대합니다.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