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상상채용'이 희망이다

'상상채용'이 희망이다

by 운영자 2012.02.03

‘꽃술이 떨리는/ 매화의 향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 있는 모든 것들/ 다시 사랑하라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세요, 봄’ 이해인 시인은 ‘입춘’을 노래하며 매향 향기 머금은 봄이 사랑을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기를 기원한다.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4일)이다. 매운바람 속에 잔뜩 움츠린 마음에도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선친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던 어린 시절, 입춘방(立春榜)은 내 몫이었다.

한자를 그리듯이 쓴 삐뚤삐뚤한 글자지만 어린 자식이 써야 새 기운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배려였다. 가장 흔히 쓴 춘축(春祝)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봄이 시작 되었으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라’는 소망이 담겼다.

번듯한 큰 대문이 없었던 터라 마루의 양쪽 기둥이나 안방 문 위 벽에 팔(八)자 형태로 붙였다. 예전엔 입춘날 보리뿌리를 캐어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세생채(細生菜)라여 파와 당귀, 겨자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겨울 동안 결핍된 신선한 채소의 맛으로 입맛을 돋우기도 했으나 이제는 사라진 세시풍습이 되버렸다.

그래도 변하지 않고 우리 집에서 이어오는 것은 장 담그기다. 입춘을 전후해 담그는 ‘정월장’은 짜게 담그지 않아도 쉬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맛도 가장 좋다고 하여 이맘때 담근다.

귀찮기도 하고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명품 된장’이 많으니 사서 먹자고 해도 아내는 “너무 비싸다”며 장 담그기를 고집하니 따를 수밖에.

지난해 늦가을 국산 콩을 사다가 삶았다. 디딜방아와 절구가 없으니 깨끗이 빤 마대에 넣고 발로 밟아 으깨었다. 메주 만드는 틀이 없으니 손으로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옥상에서 햇볕에 말린 뒤 옥탑방에 전기장판을 갈고 발효시켰다. 장을 담글 때 시골에서는 짚을 태워 장독을 소독했으나 신문지를 짚 대용으로 사용한다.

커다란 고무 함지에 물을 붓고 소금을 넣은 뒤 염도 측정은 달걀을 이용하는 것은 예전 방식 그대로다. 달걀 윗부분이 물위에 살짝 고개를 내민 상태가 적당하다. 두 달 가까이 지난 뒤 된장을 꺼내고 간장을 달이는 일도 녹녹치 않고 집안에 밴 냄새도 고약하다. 요즘은 한 해 걸러 한 번씩 하는 입춘 무렵의 가풍이다.

희망의 싹을 틔워야 할 입춘이지만 세상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진다. 민심을 다독거려야 할 정치는 희망이 아니라 국민을 짜증나게 만든다. 서민들은 뜀박질하는 물가를 따라 잡기에도 숨이 가쁘다.

새 학기를 앞둔 학부모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 매야할 판이다. 그나마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시니어 사원’ 채용 확산 움직임은 희망뉴스다. 업체는 숙련된 인력을 얻고 은퇴자는 일자리를 얻는 ‘상생채용’이 더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새봄을 맞이하자.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