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에 담긴 큰 마음
사소함에 담긴 큰 마음
by 운영자 2012.02.22
서른 살에 세계 100대 대학 중의 하나인 푸단대학의 교수가 된 사람, 그렇지만 그에게 찾아온 병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사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모아 만든 책, 우연히 책에 대한 소개를 대하고는 책을 구했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이었습니다. 인생의 정점에 섰던 이가 길의 끝에 서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 모임에 강의를 부탁받아 다녀오는 길, 책을 챙겨 떠났고 틈틈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먼저 나온 글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유독 추위를 탔습니다. 여름에도 항상 여벌옷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몸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어서 웬만한 남자 아이들보다도 건강했고 운동도 좋아했지만 추운 건 딱 질색이었습니다.
저자의 남편도 대학교수였는데 잠자리와 관련 두 부부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먼저 저자는 잠을 잘 때 벽을 바라보아야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그를 키웠는데, 낯을 하도 가려 할 수 없이 벽을 보게 하고 등을 토닥여 잠을 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벽을 바라보아야 잠을 잘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남편에게는 독특한 장난기가 있었는데, 아내의 잠자리를 빼앗는 일이었습니다. 기회가 되기만 하면 아내의 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피곤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런 장난을 받아줄 겨를이 없었지요. 그런데도 남편은 한사코 장난을 그치지 않았고, 화를 낼라치면 사람 좋은 웃음을 웃을 뿐이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학교 교수, 역시 교수인 남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중국과 노르웨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다란 프로젝트의 책임자, 마음껏 꿈을 펼치고 마음껏 행복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 시점에 그녀에게 병이 찾아왔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를 알 수 없는 중한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할 때였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이동용 응급침대에 실려 병실로 돌아오면, 남편과 간호사들이 시트를 한 자락씩 들어 그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첨단 장비 위에서 검사를 받았으니 따뜻한 침대가 그리웠겠지요.
그런데 침대에 누운 저자는 침대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 뭔가 안온한 느낌이 전해진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누워 있다가 방금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짚이는 게 있어 남편에게 묻습니다. “이봐, 당신. 내 침대에 누워 있었지?”
남편은 대답대신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저자가 뭐라 한 마디 하려는데 간호사가 끼어듭니다. 남편이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경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환자 침대에 눕는 것은 규정위반이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집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야 저자는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말이지요. 늘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아내의 침대에 누웠던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지요.
이를 앙다물어도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요, 소중한 마음은 얼마든지 사소함에 담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목사>
한희철 목사는 강원도 단강교회와 독일 프랑크푸르트교회에 이어 지금은 부천의 성지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하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글로 남겨 <내가 선 이 곳은>,<하나님의 머슴도 안 살아봤나>,<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등의 책을 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이었습니다. 인생의 정점에 섰던 이가 길의 끝에 서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 모임에 강의를 부탁받아 다녀오는 길, 책을 챙겨 떠났고 틈틈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먼저 나온 글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유독 추위를 탔습니다. 여름에도 항상 여벌옷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몸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어서 웬만한 남자 아이들보다도 건강했고 운동도 좋아했지만 추운 건 딱 질색이었습니다.
저자의 남편도 대학교수였는데 잠자리와 관련 두 부부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먼저 저자는 잠을 잘 때 벽을 바라보아야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그를 키웠는데, 낯을 하도 가려 할 수 없이 벽을 보게 하고 등을 토닥여 잠을 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벽을 바라보아야 잠을 잘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남편에게는 독특한 장난기가 있었는데, 아내의 잠자리를 빼앗는 일이었습니다. 기회가 되기만 하면 아내의 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피곤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런 장난을 받아줄 겨를이 없었지요. 그런데도 남편은 한사코 장난을 그치지 않았고, 화를 낼라치면 사람 좋은 웃음을 웃을 뿐이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학교 교수, 역시 교수인 남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중국과 노르웨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다란 프로젝트의 책임자, 마음껏 꿈을 펼치고 마음껏 행복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 시점에 그녀에게 병이 찾아왔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를 알 수 없는 중한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할 때였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이동용 응급침대에 실려 병실로 돌아오면, 남편과 간호사들이 시트를 한 자락씩 들어 그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첨단 장비 위에서 검사를 받았으니 따뜻한 침대가 그리웠겠지요.
그런데 침대에 누운 저자는 침대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 뭔가 안온한 느낌이 전해진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누워 있다가 방금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짚이는 게 있어 남편에게 묻습니다. “이봐, 당신. 내 침대에 누워 있었지?”
남편은 대답대신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저자가 뭐라 한 마디 하려는데 간호사가 끼어듭니다. 남편이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경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환자 침대에 눕는 것은 규정위반이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집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야 저자는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말이지요. 늘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아내의 침대에 누웠던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지요.
이를 앙다물어도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요, 소중한 마음은 얼마든지 사소함에 담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목사>
한희철 목사는 강원도 단강교회와 독일 프랑크푸르트교회에 이어 지금은 부천의 성지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하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글로 남겨 <내가 선 이 곳은>,<하나님의 머슴도 안 살아봤나>,<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등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