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의심의 미학

의심의 미학

by 운영자 2012.03.05

의심은 대체로 나쁜 것으로 인식 되고 있다. 그러나 의심은 반드시 필요한 기제이다. 그러기에 의사는 건강을 위해 의심할 것을 권한다. 이유 없이 지치고 힘들다면 “갑상선 기능이상”을 의심해야 하고, 걸을 때마다 종아리가 땅기고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면 동맥경화증을 의심해야 한단다.

철학자들 역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심이 인간과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할 것을 권한다.

결국 의심은 거짓과 기만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만일 의심을 봉쇄하며 하나의 이념에 복종시키려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의심 없이 타성에 젖어 안주하는 사람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옳음에 이르는 길은 좁지만 오류에 빠지게 하는 길은 넓다. 만일 의심이 없으면 분별력을 갖지 못하여 넓은 길, 오류의 길로 덜컥 들어서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할 줄 몰랐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심을 터부시 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의심 없는 사회에서는 거짓과 기만이 활개를 친다. 어떤 결과를 맹신한 나머지 다른 증거들을 외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어리석음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보라! 세상에는 허풍, 조롱, 기만, 사기, 아첨, 모함, 편견 등 옳음을 이길 수 있는 수많은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뒤엉켜 분별이 어려운 이 어지러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이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어떤 사건이나 주장에 대하여 가타부타 섣부르게 판단부터 내리기보다는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숙고하며, 드러난 것을 의심해 보는 쪽이 훨씬 지혜로운 자세 아니겠는가!

단연코 의심은 분열을 낳고 불신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짓된 것을 물리치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의심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삶에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진실이 아닐 경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주변의 거짓된 것들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가?

획일화 된 삶, 편 가르기 풍토, 잘못된 가치관 등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생각 없이 접하는 모든 것들에 의심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우리는 이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스스로 세계를 파괴하는가? 왜 우리는 권력자들이 지시하는 것을 따르고 있는가?

왜 우리는 정치인들의 장밋빛 약속에 현혹되는가? 왜 우리는 시민운동가들의 주장이 객관적이라고 믿는가? 왜 노인은 무기력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진보는 바람직하다고 믿는가? 왜 “불편한 진실”의 진실은 덮으려 하는가? 나는 왜 내 판단이 옳다고 믿는가? 의심하라, 의심하라, 의심하라!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