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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백

마음의 여백

by 운영자 2012.03.06

저는 지금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책다방(북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소문이 덜 났는지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적고 조용해서 요즘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널찍한 책상에 책이며 필통이며 안경 따위를 잔뜩 늘어놓아도 눈치를 주지 않아 어지르기 대장인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 편한 곳입니다.

멀쩡한 집, 그것도 식구들 다 나가고 조용하게 비어있는 집을 놔두고 왜 굳이 차비 쓰고 커피 값 써가며 밖에서 일을 하고 책을 보냐고 하면 별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가끔 머무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집에 있으면 쓸데없는 전화와 인터폰이 울려대곤 해서 방해를 받기도 하고, 다른 때는 집안일에 통 눈을 돌리지 않고 살면서도 일 하려고 앉으면 이것저것 해찰 심한 아이처럼 둘러보고 건드리게 됩니다.

오빠와 언니가 있는 삼남매의 막내로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늘 방을 같이 썼습니다. 당연한 일로 여겼기에 불평이란 없었고, 오히려 신혼여행 떠나는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와 방에 들어섰을 때 미처 언니 짐이 빠지지도 않았는데 엄청 허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자라면서 나만의 방, 혼자만의 공간을 간절하게 바라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런 바람 자체가 호사스러운 꿈같은 것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파트 주방에 주부만의 공간을 마련하자, 귀퉁이에 작은 책상이라도 놓고 책을 읽고 가계부를 쓰자는 운동이 한창 벌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좁은 방 한 칸에 책꽂이를 둘러 세우고 책상을 놓아 서재 흉내를 냈지만 포대기로 업은 아이를 얼러가며 서서 책을 읽었고, 띠를 둘러 앞으로 돌려 안고 재우며 옆으로 고개를 빼 신문을 한 줄씩 읽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식탁을 책상 삼아 아이들과 둘러 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서재, 아이 놀이방, 침실, 거실을 확실하게 나누어 쓸 만큼 넓은 집이 아니고, 아이가 어리면 누구나 비슷하게 살 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살면서 다른 사람과 마음이 오가는 교류가 거의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물론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어울려 살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간혹 출퇴근 시간의 자동차 안에서 꽉 막히는 도로 상황에 답답해하면서도 혼자만의 공간에 자신도 모르게 슬쩍 편안함을 느끼는 지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책다방의 구석 자리에서 제가 혼자만의 세계에 이렇게 빠져있는 것처럼요. 아니 어쩜 이것은 눈에 보이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마음속 여백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