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깨우는 봄의 소리
생명 깨우는 봄의 소리
by 운영자 2012.03.07
고집도 세고 성격도 사나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겨울도 어김없이 가는 시간에 밀려 물러가고, 어느새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경칩이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쯤엔 산골마을 골짝 골짝마다 개구리 입 떨어지는 소리 쟁쟁하게 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개구리가 때를 아는 것인지, 때가 개구리를 깨우는 것인지 경칩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 추위를 피해 땅속 적당한 깊이에 들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자기의 때가 왔음을 언제 어떻게 알아차리고 경칩 때를 맞춰 땅 밖으로 나와 첫 울음을 우는 것인지, 자기의 때를 어김없이 짐작하는 자연의 모습이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개구리가 첫 울음을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겨울잠에서 깨어나 울어대는 개구리의 첫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신비롭기만 합니다.
끼루룩, 끼루룩, 끼루룩…, 바닷가의 갈매기 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입니다. 낮게 이어지던 소리는 이내 수 천 수 만의 갈매기 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소리로 바뀝니다.
먼저 깨어난 개구리가 아직 깨지 않은 개구리를 깨워내고, 그렇게 깨어난 개구리가 또 다른 개구리를 깨우고, 노래 소리가 커지는 까닭이겠지요.
봄을 맞으며 골짜기에 울려퍼지는 그 신비한 소리는 봄을 노래하는 그 어떤 교향곡보다도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점점 여리게’(decrescendo)부터 ‘점점 세게’(crescendo)까지를 따로 지휘자도 없이 언제 연습한 것도 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자연이 빚어내는 연주는 놀랍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경험하는 일입니다만 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오는 것도 아닙니다. 동장군이 쉽게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충분히 물러갔다 싶다가도 어느새 벌떡 일어나 날을 세웁니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느닷없이 찾아와 막 눈을 뜨는 여린 봄의 눈들을 얼어붙게 합니다.
다 지나갔다 싶은 겨울이 다시 솜이불을 펴고 자리에 눕듯 눈이 대지를 덮곤 합니다. 막 피어나는 꽃망울을 눈이 덮는 순간은 겨울과 봄이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사납게 쫓고 정신없이 도망을 쳐 결코 사이가 좋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겨울과 봄이라는 두 계절이 가만 만나 얼굴을 맞대는 순간이지요. 그러고 보면 겨울과 봄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답기만 합니다.
그렇게 때늦은 춘설이 쏟아지면 골짜기에 울려 퍼지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한순간에 잦아듭니다. 마치 한창 연주 중인 지휘자의 손동작이 멈추기라도 한 듯 일시에 멈춰버립니다.
골짜기에 다시 찾아든 잠깐의 침묵,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의 소리가 신비로웠듯 눈 속에서 이루어지는 침묵 또한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잠시 멈췄던 지휘자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 개구리 울음소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조심조심 그러다가는 이내 커다란 합창이 되지요.
내린 눈 속에서 “이게 뭐지?” “저게 뭔지 아니?”, 저마다 눈을 보고 깜작 놀라 한 마디씩을 하니 더욱 시끄러울 수밖에요. 그립습니다, 그 소리! 어느새 사라진 대지를 가득 채우던 생명의 소리.
한희철 <목사>
경칩이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쯤엔 산골마을 골짝 골짝마다 개구리 입 떨어지는 소리 쟁쟁하게 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개구리가 때를 아는 것인지, 때가 개구리를 깨우는 것인지 경칩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 추위를 피해 땅속 적당한 깊이에 들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자기의 때가 왔음을 언제 어떻게 알아차리고 경칩 때를 맞춰 땅 밖으로 나와 첫 울음을 우는 것인지, 자기의 때를 어김없이 짐작하는 자연의 모습이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개구리가 첫 울음을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겨울잠에서 깨어나 울어대는 개구리의 첫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신비롭기만 합니다.
끼루룩, 끼루룩, 끼루룩…, 바닷가의 갈매기 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입니다. 낮게 이어지던 소리는 이내 수 천 수 만의 갈매기 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소리로 바뀝니다.
먼저 깨어난 개구리가 아직 깨지 않은 개구리를 깨워내고, 그렇게 깨어난 개구리가 또 다른 개구리를 깨우고, 노래 소리가 커지는 까닭이겠지요.
봄을 맞으며 골짜기에 울려퍼지는 그 신비한 소리는 봄을 노래하는 그 어떤 교향곡보다도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점점 여리게’(decrescendo)부터 ‘점점 세게’(crescendo)까지를 따로 지휘자도 없이 언제 연습한 것도 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자연이 빚어내는 연주는 놀랍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경험하는 일입니다만 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오는 것도 아닙니다. 동장군이 쉽게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충분히 물러갔다 싶다가도 어느새 벌떡 일어나 날을 세웁니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느닷없이 찾아와 막 눈을 뜨는 여린 봄의 눈들을 얼어붙게 합니다.
다 지나갔다 싶은 겨울이 다시 솜이불을 펴고 자리에 눕듯 눈이 대지를 덮곤 합니다. 막 피어나는 꽃망울을 눈이 덮는 순간은 겨울과 봄이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사납게 쫓고 정신없이 도망을 쳐 결코 사이가 좋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겨울과 봄이라는 두 계절이 가만 만나 얼굴을 맞대는 순간이지요. 그러고 보면 겨울과 봄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답기만 합니다.
그렇게 때늦은 춘설이 쏟아지면 골짜기에 울려 퍼지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한순간에 잦아듭니다. 마치 한창 연주 중인 지휘자의 손동작이 멈추기라도 한 듯 일시에 멈춰버립니다.
골짜기에 다시 찾아든 잠깐의 침묵,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의 소리가 신비로웠듯 눈 속에서 이루어지는 침묵 또한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잠시 멈췄던 지휘자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 개구리 울음소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조심조심 그러다가는 이내 커다란 합창이 되지요.
내린 눈 속에서 “이게 뭐지?” “저게 뭔지 아니?”, 저마다 눈을 보고 깜작 놀라 한 마디씩을 하니 더욱 시끄러울 수밖에요. 그립습니다, 그 소리! 어느새 사라진 대지를 가득 채우던 생명의 소리.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