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사위 이야기
조카사위 이야기
by 운영자 2012.03.12
조카와 나란히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사위는 저를 보자마자 배꼽인사를 합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고 ‘이모’라고 부르면 된다고 떠듬떠듬 말해주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입이 안 떨어집니다. 그러니 둘이 눈만 마주치면 씩 웃는 게 다입니다.
“이름은 존. 나이 서른다섯 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지금 사는 곳은 호주 멜버른. 아주 어릴 때 온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해서 말레이시아 말은 못하고 영어로 의사소통.”
호주에 살고 있는 언니의 딸인 제 조카와 오랜 연애 끝에 지난 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고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사위가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하필이면 꽃샘추위가 매울 때라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딱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퍽이나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고맙게도 이것저것 권하는 대로 곧잘 젓가락을 가져갑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동으로 가 태극기를 만든 박영효의 저택이었던 곳에 있는 전통다원을 찾았습니다.
뜨끈한 온돌방에 둘러앉으니 격자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은은하고 차향까지 섞여들어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집니다. 사위도 긴장이 풀리는지 연신 제 아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삼십 년 이상 각기 다르게 살아왔고 거기다가 태어난 나라와 배경 또한 다르니 문화에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조카부부의 결혼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조금은 별난 일일 겁니다. 이런 저런 갈등과 설득을 거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가족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조카의 결혼소식에 한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 중 연세가 많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우실 거라 짐작했던 친정아버지(조카에게는 외할아버지)의 반응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국제전화로 결혼 결정 소식을 들은 구순(九旬)의 아버지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축하한다! 우리 손녀가 드디어 짝을 만났구나. 어느 나라 사람이면 어떠냐. 마음 통하면 산다. 둘이 사이좋게 잘 살아라!”
이제 며칠 후면 두 사람은 휴가를 마치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호주로 돌아가 알콩달콩 티격태격 살아가겠지요. 또 아기를 낳아 부모가 되겠지요. 조카부부가 앞으로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일 궂은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합해져야 부부 나이테가 제대로 늘어나는 거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아기가 태어나면 저는 이모할머니가 될 텐데 아기랑 한 마디라도 하려면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해야겠지요? 휴우, 한숨부터 나옵니다.
유경 <작가>
아니,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입이 안 떨어집니다. 그러니 둘이 눈만 마주치면 씩 웃는 게 다입니다.
“이름은 존. 나이 서른다섯 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지금 사는 곳은 호주 멜버른. 아주 어릴 때 온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해서 말레이시아 말은 못하고 영어로 의사소통.”
호주에 살고 있는 언니의 딸인 제 조카와 오랜 연애 끝에 지난 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고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사위가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하필이면 꽃샘추위가 매울 때라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딱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퍽이나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고맙게도 이것저것 권하는 대로 곧잘 젓가락을 가져갑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동으로 가 태극기를 만든 박영효의 저택이었던 곳에 있는 전통다원을 찾았습니다.
뜨끈한 온돌방에 둘러앉으니 격자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은은하고 차향까지 섞여들어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집니다. 사위도 긴장이 풀리는지 연신 제 아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삼십 년 이상 각기 다르게 살아왔고 거기다가 태어난 나라와 배경 또한 다르니 문화에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조카부부의 결혼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조금은 별난 일일 겁니다. 이런 저런 갈등과 설득을 거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가족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조카의 결혼소식에 한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 중 연세가 많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우실 거라 짐작했던 친정아버지(조카에게는 외할아버지)의 반응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국제전화로 결혼 결정 소식을 들은 구순(九旬)의 아버지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축하한다! 우리 손녀가 드디어 짝을 만났구나. 어느 나라 사람이면 어떠냐. 마음 통하면 산다. 둘이 사이좋게 잘 살아라!”
이제 며칠 후면 두 사람은 휴가를 마치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호주로 돌아가 알콩달콩 티격태격 살아가겠지요. 또 아기를 낳아 부모가 되겠지요. 조카부부가 앞으로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일 궂은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합해져야 부부 나이테가 제대로 늘어나는 거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아기가 태어나면 저는 이모할머니가 될 텐데 아기랑 한 마디라도 하려면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해야겠지요? 휴우, 한숨부터 나옵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