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이테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by 운영자 2012.03.13
학창시절, 매우 좋아했던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 시를 설명할 때, 당시 말씀하시던 톤이나 제스처가 떠오른다. 당시 선생님은 5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고통들을 감내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하고, 이렇게 인내해 중년이 되어 모든 것들을 담담히 바라보는 초연한 자세를 가을의 국화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묘한 미소까지 생각난다.
중년의 선생님이 표현하셨던 인생의 깊이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10대 후반의 소녀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선생님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느낄 수 있었다.
몇 년전부터 간간히 무릎이 아팠는데, 작년 가을부터 왼쪽 무릎에 통증이 심해졌다. 수여차례 침을 맞기 위해 추운 날씨에 한의원을 다녀야 했고, 통증이 심한 날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생전 처음 부황이라는 것도 해보고, 적외선으로 치료하며 무릎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속되는 몇 달 동안 마음까지 썩 편치 않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일전에 다녔던 신경외과로 다시 찾아갔다. 병원 형광판에 내 이름이 나오고 호명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일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겨우 진료하였는데 선생님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앞으로 조심해야할 몇 가지를 일러주고, 처방 약을 주며 몇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침이나 적외선 치료기가 소용없다는 것이다. 실은 무릎 치료를 위해 한의원과 병원에 시간과 경제를 소비한 것은 물론이요, 공부나 원고도 제때 진행되지 못했다.
저녁에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았다. 나의 부모님과 스승도 이런 고통을 몇 차례 겪은 것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사찰 법당에서 연세 드신 신도님들이 부처님 앞에서 발을 뻗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법당에서 저러고 계실까?’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였다(무릎 관절은 발을 펴고 있어야 함). 이제서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겨울과 봄, 여름의 처절한 날씨를 이겨내야 가을이라는 계절에 국화라는 생명이 탄생하듯 인간도 외로움과 절대 고독을 통하여 자기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철들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울수록 현명해진다고 하였다.
인생의 진정성을 깨닫고 그 진정성 속에서 삶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데는 ‘세월’이라는 고귀한 대가를 치러야 얻어지는 법이었다.
그래서 옛날 말에 잘난 아우보다 못난 형이 낫다고 하였는데,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일찍 승려가 되어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세월’이라는 아픔을 통해 값지게 얻는 교훈임을 마음 깊이 새긴다.
정운 <스님>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 시를 설명할 때, 당시 말씀하시던 톤이나 제스처가 떠오른다. 당시 선생님은 5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고통들을 감내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하고, 이렇게 인내해 중년이 되어 모든 것들을 담담히 바라보는 초연한 자세를 가을의 국화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묘한 미소까지 생각난다.
중년의 선생님이 표현하셨던 인생의 깊이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10대 후반의 소녀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선생님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느낄 수 있었다.
몇 년전부터 간간히 무릎이 아팠는데, 작년 가을부터 왼쪽 무릎에 통증이 심해졌다. 수여차례 침을 맞기 위해 추운 날씨에 한의원을 다녀야 했고, 통증이 심한 날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생전 처음 부황이라는 것도 해보고, 적외선으로 치료하며 무릎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속되는 몇 달 동안 마음까지 썩 편치 않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일전에 다녔던 신경외과로 다시 찾아갔다. 병원 형광판에 내 이름이 나오고 호명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일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겨우 진료하였는데 선생님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앞으로 조심해야할 몇 가지를 일러주고, 처방 약을 주며 몇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침이나 적외선 치료기가 소용없다는 것이다. 실은 무릎 치료를 위해 한의원과 병원에 시간과 경제를 소비한 것은 물론이요, 공부나 원고도 제때 진행되지 못했다.
저녁에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았다. 나의 부모님과 스승도 이런 고통을 몇 차례 겪은 것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사찰 법당에서 연세 드신 신도님들이 부처님 앞에서 발을 뻗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법당에서 저러고 계실까?’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였다(무릎 관절은 발을 펴고 있어야 함). 이제서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겨울과 봄, 여름의 처절한 날씨를 이겨내야 가을이라는 계절에 국화라는 생명이 탄생하듯 인간도 외로움과 절대 고독을 통하여 자기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철들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울수록 현명해진다고 하였다.
인생의 진정성을 깨닫고 그 진정성 속에서 삶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데는 ‘세월’이라는 고귀한 대가를 치러야 얻어지는 법이었다.
그래서 옛날 말에 잘난 아우보다 못난 형이 낫다고 하였는데,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일찍 승려가 되어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세월’이라는 아픔을 통해 값지게 얻는 교훈임을 마음 깊이 새긴다.
정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