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누군가를 가만 안는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가만 안는다고 하는 것은

by 운영자 2012.03.21

부산에서 모임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타야지 했던 고속열차 KTX를 처음으로 타게 되었습니다. 동행하는 일행 몇 명과 함께 광명역으로 나갔더니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웅장한 규모의 역사도 그랬지만, 기차를 타는 방식도 새로웠습니다. 전철을 타더라도 표를 끓고 개찰을 해야 하는데, 부산까지 가는 기차를 타는데도 누구 하나 표를 확인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일은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이어졌고, 부산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나갈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에서 기차를 타던 때와 다름이 없어 우리의 달라진 모습이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열차의 중앙에 있는 단체석도 재미있었습니다. 각각 두 명씩 앉게 되어 있는 다른 좌석과는 달리 중앙에 위치한 단체석은 서로 마주앉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일행이 네 명,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니 부산이 잠깐이었습니다. 단체석으로 표를 끊으면 상당 부분 할인을 해주는 제도도 좋은 아이디어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 중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라니, 당연히 비행기나 고속열차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단체석에 앉아 전에 들었던 그 말을 실감하였지요.

부산을 찾았던 것은 아는 분의 사진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산까지 가서 사진 전시회를 볼 만큼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은 분이 깊은 병을 얻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지인들이 전시회 자리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들꽃을 눈여겨 찍었고,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풀잎 끝에 매달려 있는 이슬의 영롱함을 찍어왔습니다. 또 그만큼이나 상처 입은 여린 생명들을 사랑으로 품어오셨지요.

그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사방 벽에 그분이 찍은 사진이 걸렸고, 어떤 이는 노래를 어떤 이는 시를 어떤 이는 악기를 어떤 이는 춤을 어떤 이는 함께 했던 시간들을 이야기를 통해 나누었습니다.

함께 한 시간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되돌아보고 감사하는, 내내 따뜻함이 흐르는 복된 자리였습니다. 순서를 모두 마치는 시간, 사회를 보던 이가 옆의 사람들을 안아주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얼싸안기’라는 말이 몸이 아닌 얼을 감싸 안아주는 것이니 얼싸안기를 하자는 것이었지요. 어색함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이 주었던 감동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를 얼싸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 날의 주인공인 그 분을 돌아가며 안아드리자는 의미가 가장 컸지 싶습니다만, 고마움과 축복의 마음을 가득 담아 누군가를 가만 안아준다고 하는 것은 드물지만 정말로 마음 뭉클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서로를 안는 시간은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일이,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안긴 일이 드물었던 만큼 우리 마음 외로웠고 메말랐기 때문이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가만 안아준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삶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었습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