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과 ‘늙은이’
‘어르신’과 ‘늙은이’
by 운영자 2012.04.06
복잡한 러시아워 때 일반석 젊은이 앞에 서서 은근히 일어서기를 바라며 눈치를 보내는 노인은 ‘늙은이’다.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도 곧 내린다거나 서 있는 것도 운동이라며 사양하는 노인은 점잖은 ‘어르신’이다.
이른 아침부터 경로석을 차지하고 있으면 주책없는 ‘늙은이’고, 출퇴근시간을 피해 수도권 근교로 나가는 노인은 염치를 아는 ‘어르신’이다.
종묘와 파고다 공원을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죽이면 ‘늙은이’고, 실버극장을 찾아 흘러간 영화라도 보며 여유를 누리면 ‘어르신’에 속한다.
‘늙은이’와 ‘어른신’은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늬앙스는 전혀 다르다.
나이든 것이 벼슬도 아닌 데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군림하려들면 ‘늙은이’고, 경륜과 지혜를 펴며 배려할 줄 알면 ‘어르신’이다.
왕년에 잘나갔다고 너스레를 떨며 자랑을 늘어놓으면 ‘늙은이’고, 나이를 잊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하는 노인은 ‘어르신’이다.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허위의식에 가득 차 노욕을 부리면 ‘늙은이’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빗나갈 때 따끔한 충고를 해주면 ‘어르신’이다.
말끝마다 “이 나이에 무슨∼” “우리 같은 늙은이를∼”하며 만사에 의욕을 잃으면 ‘늙은이’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무슨 일이든 당당하게 일하는 노인은 ‘어르신’에 속한다.
최근 만난 팔순의 언론인 선배는 10여 년째 병원과 양노원에서 노인 수발 등 성당봉사활동을 하며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자원봉사’에 보람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은빛 실버 어르신’이다.
미국에서는 노인을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부른다. 시니어라는 어휘에는 풍부한 경륜이, 시티즌이라는 말에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65세에서 75세를 '영 올드(Young Old)' 또는 '활동적 은퇴기(Active Retirement)'라고도 한다. 인생 100년을 사계절에 비추어 25세까지는 봄, 50세까지는 여름, 75세까지는 가을, 100까지를 겨울에 비유한다. 은퇴이후는 인생의 가을과 마찬가지다.
‘어르신’처럼 행동하면 인생의 황혼이 단풍처럼 곱게 비쳐지지만, 주책없는 ‘늙은이’로 살면 비에 젖은 낙엽처럼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542만 명이나 된다. ‘어르신’과 ‘늙은이’로 나누면 그 비율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인생 칠십은 옛말이고, 100세 시대가 현실화 됐는데도 여전히 65세가 되면 노인취급하며 전철을 공짜로 타게 하고 고궁이나 국공립박물관에 공짜로 들어가게 배려하는 것은 시정해야할 시점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이나 국민연금법의 노인기준은 60세부터다.
지난해 ‘고령자 심포지엄’에서 노인의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노추를 보이며 ‘늙은이’로 살아 갈 것인가?
당당하게 ‘어르신’으로 존경 받고 살 것인가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시에서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고 노래 했듯이 육체적 연령 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적 젊음이다.
이규섭<시인>
이른 아침부터 경로석을 차지하고 있으면 주책없는 ‘늙은이’고, 출퇴근시간을 피해 수도권 근교로 나가는 노인은 염치를 아는 ‘어르신’이다.
종묘와 파고다 공원을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죽이면 ‘늙은이’고, 실버극장을 찾아 흘러간 영화라도 보며 여유를 누리면 ‘어르신’에 속한다.
‘늙은이’와 ‘어른신’은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늬앙스는 전혀 다르다.
나이든 것이 벼슬도 아닌 데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군림하려들면 ‘늙은이’고, 경륜과 지혜를 펴며 배려할 줄 알면 ‘어르신’이다.
왕년에 잘나갔다고 너스레를 떨며 자랑을 늘어놓으면 ‘늙은이’고, 나이를 잊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하는 노인은 ‘어르신’이다.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허위의식에 가득 차 노욕을 부리면 ‘늙은이’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빗나갈 때 따끔한 충고를 해주면 ‘어르신’이다.
말끝마다 “이 나이에 무슨∼” “우리 같은 늙은이를∼”하며 만사에 의욕을 잃으면 ‘늙은이’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무슨 일이든 당당하게 일하는 노인은 ‘어르신’에 속한다.
최근 만난 팔순의 언론인 선배는 10여 년째 병원과 양노원에서 노인 수발 등 성당봉사활동을 하며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자원봉사’에 보람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은빛 실버 어르신’이다.
미국에서는 노인을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부른다. 시니어라는 어휘에는 풍부한 경륜이, 시티즌이라는 말에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65세에서 75세를 '영 올드(Young Old)' 또는 '활동적 은퇴기(Active Retirement)'라고도 한다. 인생 100년을 사계절에 비추어 25세까지는 봄, 50세까지는 여름, 75세까지는 가을, 100까지를 겨울에 비유한다. 은퇴이후는 인생의 가을과 마찬가지다.
‘어르신’처럼 행동하면 인생의 황혼이 단풍처럼 곱게 비쳐지지만, 주책없는 ‘늙은이’로 살면 비에 젖은 낙엽처럼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542만 명이나 된다. ‘어르신’과 ‘늙은이’로 나누면 그 비율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인생 칠십은 옛말이고, 100세 시대가 현실화 됐는데도 여전히 65세가 되면 노인취급하며 전철을 공짜로 타게 하고 고궁이나 국공립박물관에 공짜로 들어가게 배려하는 것은 시정해야할 시점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이나 국민연금법의 노인기준은 60세부터다.
지난해 ‘고령자 심포지엄’에서 노인의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노추를 보이며 ‘늙은이’로 살아 갈 것인가?
당당하게 ‘어르신’으로 존경 받고 살 것인가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시에서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고 노래 했듯이 육체적 연령 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적 젊음이다.
이규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