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호모 헌드레드의 역설”에 대한 역설

“호모 헌드레드의 역설”에 대한 역설

by 운영자 2012.06.11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고령인구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수하는 사회가 되면서 2020~2025년경이면 우리나라도 100세 시대에 들어 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엔에서는 100세 장수가 보편화하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면서 100세 장수사회를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장수사회의 도래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노인들의 특수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고 경제학자들은 은퇴자들의 비중 증가로 인해 비생산집단에 들어 갈 비용을 걱정하고 사회복지학자들은 노인부양대책 마련에 머리를 쥐어짜고 인구통계학자들은 괴상한 모양의 인구피라미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고령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잿빛이다. 일도 없고 병들고 고독하게 긴 생을 살아야 하는 노인들이 가득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울해 한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 40%가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수의 꿈이 실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장수를 재앙으로 여기는 “호모헌드레드의 역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사회를 바라보는 우울한 전망은 어디까지나 노인을 부양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고령사회로 진전되면서 소위 “나이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나이혁명은 “노인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설명된다. 오늘의 노인은 과거의 노인과 다르다. 대부분 건강하고 진취적이며 사회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부양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 인류는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소위 “호모 헌드레드”라는 신인류 사회로 진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60대=노인’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을 부양대상, 골치 아픈 사회적 부담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부양해야 할 것인지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령사회에 대한 대책과 준비는 노후생활대책으로 모아지고 어떻게 재정을 확보할까 탁상공론 하는 사이, 노년세대와 고령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호모 헌드레드의 역설에 대한 역설”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제도와 인식 수준에서 100세 사회의 도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체계의 혁신과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호모 헌드레드라는 신인류에 걸 맞는 새로운 사회를 실현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연전시키는 발상의 전환과 호모 헌드레드의 역설에 맞서는 또 다른 역설을 강구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노인을 부양대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노인의 입장에서 사회적 동력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유지 발전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이성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