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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놀라셨겠네요!

아이고, 놀라셨겠네요!

by 운영자 2012.07.09

얼마 전 누가 맛 좀 보라며 약밥을 보내왔는데, 어찌나 말랑말랑하고 고소하던지 그 자리에서 보자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간식용 낱개포장 반말을 주문했습니다.

이틀 후 도착한 약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별다른 주의사항이 적혀 있지 않아서 몇 개 꺼내 맛을 보고는 그냥 베란다에 놓고 하룻밤 잔 게 문제였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식으로 가지고 간 아이에게서 약밥을 한 입 먹었더니 쓰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먹지 말라 이르고 얼른 확인을 해보니 쉰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약간 상한 것 같았습니다.

돈도 돈이고 맛있는 약밥 반말을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몽땅 버리게 생겼으니 속이 상했습니다. 다른 때 떡을 주문하면 개봉 즉시 냉장 보관하라든가, 냉동 후 데워먹는 방법 등이 적혀 있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주의사항이 없다고 방심을 했던 것이지요.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떡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관 잘못인 것을 익히 알기에 책임을 묻거나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앞으로는 떡 보낼 때 메모라도 한 줄 적어 보내면 좋겠다고 건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 야단을 칩니다. 우리 떡은 워낙 나쁜 것을 넣지 않으니 당연히 냉장 보관해야 한다, 떡 보관 방법도 모르느냐고 합니다.

괜히 전화를 걸어 마음만 상했습니다. 제 잘못을 모르는 게 아니고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니 건의를 한 것인데, 그렇게 말하니 몹시 언짢았습니다.

냉동실에 급히 넣어두었던 약밥을 전부 꺼내 낱개포장을 일일이 풀어서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달 저희 집 식탁 유리를 갈아준 유리가게 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낮에 혼자 점심을 차리다가 식탁에 놓았던 참기름 병을 잘못 건드렸는데 그만 ‘딱’하며 큰소리가 나더니 식탁 유리에 거미줄처럼 줄이 좍 가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금이 가서 식구들 손이라도 다칠까 당황스러웠습니다. 깨진 유리를 치우기라도 해놓고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상가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가 연결되자 당황한 마음에 다짜고짜 ‘식탁유리가 깨졌는데 어떻게 하죠?’ 하니 놀랍게도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이고, 놀라셨겠네요!”

유리를 깼다는 당황스러움과 걱정,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단 번에 사라집니다.

하루아침에 상해버린 약밥 때문에 속상해하는 손님에게 우아하고 교양 있는 말씨로 똑떨어지게 야단을 쳐대던 떡집 사장님과 유리를 깨서 당황하는 손님에게 놀랐겠다며 위로부터 해주던 유리가게 사장님. 두 가지 일 모두 원인제공은 물론 제가 했지만 이렇게 달랐습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