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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천국은

비오는 날 천국은

by 운영자 2012.07.18

많은 순간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의외로 작은 일들입니다. 크고 거창한 일들보다는 무시하기 좋은 작고 사소한 일들이 마음을 감동시키고는 합니다. 그 사소함 앞에 서서 가만 미소 짓기도 있고 눈물에 젖기도 합니다.

길을 지나다 만난 아스팔트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민들레 노란 꽃이 그러합니다. 하필 저 곳에서 고개를 내밀었을까 안쓰러울 정도인데 나는 괜찮아요, 어디면 어떻겠어요, 민들레는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피워냅니다.

길가 허리가 꺾인 채로 피어있는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바람에 그런 것인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막대기를 휘두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허리가 뚝 꺾인 꽃이 허리가 꺾인 채로 여전히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속상한 일이 있다며 낙심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하는 우리네 삶을 두고, 허리가 꺾인 채 여전히 피는 꽃은 말없이 많은 말을 전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덥기로 하자면 서로 멀리 떨어질수록 좋은 일, 그런데도 젊은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그것도 모자라 팔짱을 낍니다.

어디 그게 젊은 연인들뿐이겠습니까, 서로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아름답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연인으로 만나 처음 데이트를 즐기시듯 서로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잘 익은 세월이 눈부시게 빛이 납니다.

아무 것도 없이 비를 맞는 꽃, 얼굴을 가릴 손도 없이 그냥 제 자리에 서서 비를 맞는 꽃이 안쓰러워 걸음을 멈추고 서서 자기의 우산을 씌워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하굣길, 길가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개미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환한지요. 무엇을 따라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마치 냇물이 흘러가듯 떼를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개미라는 생명이 펼치는 신비의 대장정에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갑자기 비가 내려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습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퇴근길 사람들의 걸음이 더욱 부산했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볼만 했습니다.

길을 지나며 보니 버스 정류장 옆에 아기를 등에 업은 젊은 엄마가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찬 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양보라도 한 듯 아기 엄마는 정류장 밖에 서서 아기와 자신을 우산으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버스에서 내리는 이를 가만 살폈는데, 보니 다른 한 손에는 우산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비가 내리니 우산을 들고 버스정류장까지 나온 것이겠지요. 또 한 사람 아빠를 기다리는 아기를 위해 아기를 등에 업었을 터이고요.

집에서는 시간에 맞춰 김치찌개가 잘 끓고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된장찌개에 호박잎을 삶아놓았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비가 오면 올수록 집은 환하겠지요. 하루가 곤하면 곤할수록 잠이 달겠고요. 느닷없이 비 오는 날 저녁, 천국은 그렇게 가만 오고 있었습니다.

한희철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