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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궁전의 몽환적 색감

알람브라궁전의 몽환적 색감

by 운영자 2012.07.27

영롱한 선율 속에 애잔함이 묻어나는 클래식 기타의 명곡 ‘알람브라궁전의 추억’ 영향인가. 알람브라궁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으면서도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의 전경을 먼저 조망하기 위해 알바이신 언덕에 올랐다. 성 니콜라스 성당 앞 광장에는 집시풍의 젊은이들이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하여 기대를 부풀린다.

알바이신 언덕은 이슬람 왕조가 무너진 뒤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도피처로 둥지를 튼 마을이다. 오밀조밀한 골목과 아랍 풍 주택에 걸어놓은 꽃 장식이 정겹다.

산 중턱 사크라몬테는 집시들이 동굴을 파고 거주하는 공간으로 일부는 개조하여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알바이신 언덕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궁전은 독수리 날개처럼 거대하다.

오른 쪽 붉은 성곽이 알카사바(성채), 성채 아래쪽이 나스르 궁전, 그 위쪽이 카를로스5세 궁전, 왼쪽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도열한 곳이 왕족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 정원이다.

알람브라궁전은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가 13세기 중반부터 1세기에 걸쳐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이슬람건축의 걸작이다.

대리석에 새긴 아라베스크문양은 나무나 찰흙을 깎아놓은 듯 정교하고, 레이스를 펼쳐 놓은 것 같은 천장의 조각들은 섬세하다.

궁 한 가운데 사각의 연못 둘레에는 ‘천국의 꽃’이라 불리는 아라야네스가 가지런하고,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궁전은 용궁처럼 신비롭다. 조형미가 빼어난 알람브라궁전을 보지 못하는 그라나다의 장님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했겠는가.

16세기 기독교 아라곤 왕국의 카를로스 5세가 알람브라궁전 한 가운데 알박기 하듯 지은 ‘카를로스5세 궁전’은 정복자의 오만함이 엿보인다.

1층은 도리스양식의 대리석 기둥이고, 2층은 이오니아양식으로 도넛처럼 한 복판이 비어 있는 원형 건물로 이슬람 건축과 부조화를 이룬다. 1층 바닥 한가운데에 서서 소리치면 전체가 울리 정도로 음향효과는 빼어나 그라나다국제음악제 무대로 활용한다는 것.

역사의 뒤안길엔 영광과 오욕이 교차하듯 무슬림의 마지막 군주 아부 압둘라는 알람브라 궁전에서 쫓겨나 왕궁을 뒤돌아보았다는 계곡은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이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궁전을 빼앗기고 떠나는 통한이 서려 있다. 압둘라는 지브롤터해협을 건넌 모로코 페스로 달아나 그곳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았다.

스페인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카(1852∼1909)가 작곡한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이 베여 있다.

그는 콘차라는 제자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기혼녀로 타레카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 실의에 빠진 타레카는 기타를 벗 삼아 에스파냐를 떠돌다가 알람브라궁전을 만나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추억을 트레몰로 선율에 옮겨 맑고 투명하면서도 애잔하다. 역사의 애환과 사랑의 비극이 서린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몽환적 색감이 묻어난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