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흔들렸어도
혼자서는 흔들렸어도
by 운영자 2012.08.29
곳곳에 많은 비가 내려 피해를 입은 곳이 적지가 않습니다. 가을 홍수라는 말이 영 어색합니다만 이젠 시도 때도 없이, 또한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뛰어넘는 자연의 재해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마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장마에 많은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자 한 엄마가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물 구경을 갔습니다. 동네 앞 개울물이 둑을 넘어 강처럼 불어난 채 사납게 흐르고 있었지요. 걱정 삼아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물 구경을 하던 엄마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곁에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소스라쳐 놀란 엄마가 주변을 살피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불어난 물이 그저 신기하기만 아들이 불어난 개울물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가 막 물속으로 미끄러지는 아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았으니 아들은 살았겠지요. 아무리 사나운 급류가 아들을 휩쓴다 하여도 엄마는 자기가 잡은 아들을 손을 놓지 않습니다. 내 팔이 빠진다 하여도 놓을 수가 없는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 경우라면 위험합니다. 엄마가 물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어린 아들이 뛰어가 엄마 손을 잡으면 둘 다 떠내려갑니다. 마음과는 달리 엄마를 지켜줄 힘이 아들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약한 동물들이 자기의 새끼들을 지켜내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사자 떼에게 붙잡힌 새끼를 구하기 위해 사자 떼에게 달려드는 물소 떼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평상시에야 사자를 보면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물소들이 감히 사자에게 맞서 마침내 새끼를 살려내는 모습 속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상어들의 공격을 받은 새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투를 벌이며 새끼를 지키내는 어미 고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미 고래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상어의 공격을 자신의 몸으로 막았고, 이미 지쳐버린 새끼를 자신의 등에 태워 물 밖으로 들어 올려 숨을 쉬게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마치 두 개로 조를 나누어 공격을 하는 듯 상어들의 공격은 지능적이고도 집요했지만,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조차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막아낸 어미는 마침내 새끼와 함께 깊은 바다를 향한 유영을 계속하였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길가 강아지풀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강아지풀 위에 앉아 잠시 날개를 접은 잠자리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평화는 그런 사소한 모습 속에도 깃드는 것이겠지요. 그 모습 보고 돌아서다 짧은 노래 하나 불렀습니다.
『잠시 잠자리 머물다 날아간 뒤
강아지풀 혼잣말을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선 든든해야지
혼자서는 흔들렸어도』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아지풀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희철 <목사>
장마에 많은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자 한 엄마가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물 구경을 갔습니다. 동네 앞 개울물이 둑을 넘어 강처럼 불어난 채 사납게 흐르고 있었지요. 걱정 삼아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물 구경을 하던 엄마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곁에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소스라쳐 놀란 엄마가 주변을 살피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불어난 물이 그저 신기하기만 아들이 불어난 개울물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가 막 물속으로 미끄러지는 아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았으니 아들은 살았겠지요. 아무리 사나운 급류가 아들을 휩쓴다 하여도 엄마는 자기가 잡은 아들을 손을 놓지 않습니다. 내 팔이 빠진다 하여도 놓을 수가 없는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 경우라면 위험합니다. 엄마가 물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어린 아들이 뛰어가 엄마 손을 잡으면 둘 다 떠내려갑니다. 마음과는 달리 엄마를 지켜줄 힘이 아들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약한 동물들이 자기의 새끼들을 지켜내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사자 떼에게 붙잡힌 새끼를 구하기 위해 사자 떼에게 달려드는 물소 떼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평상시에야 사자를 보면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물소들이 감히 사자에게 맞서 마침내 새끼를 살려내는 모습 속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상어들의 공격을 받은 새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투를 벌이며 새끼를 지키내는 어미 고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미 고래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상어의 공격을 자신의 몸으로 막았고, 이미 지쳐버린 새끼를 자신의 등에 태워 물 밖으로 들어 올려 숨을 쉬게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마치 두 개로 조를 나누어 공격을 하는 듯 상어들의 공격은 지능적이고도 집요했지만,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조차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막아낸 어미는 마침내 새끼와 함께 깊은 바다를 향한 유영을 계속하였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길가 강아지풀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강아지풀 위에 앉아 잠시 날개를 접은 잠자리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평화는 그런 사소한 모습 속에도 깃드는 것이겠지요. 그 모습 보고 돌아서다 짧은 노래 하나 불렀습니다.
『잠시 잠자리 머물다 날아간 뒤
강아지풀 혼잣말을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선 든든해야지
혼자서는 흔들렸어도』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아지풀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