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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인연

천년의 인연

by 운영자 2012.09.11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 함께한다는 뜻은 그저 단순히 함께 숨쉬는 옆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특히 평범한 사람이 아닌 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큰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우리 보통의 사람들의 삶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벗은 필요한 법이다. 좋은 벗 만나기 어려움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천재일우(千載一遇)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좀처럼 얻기 어려운 일을 얻거나 인연 맺음을 뜻한다. 그러나 ‘천재일우’라는 말 뒤에 현지지가회(賢智之嘉會)라는 말이 첨가되어 (현명한) 군주와 (지혜가 뛰어난) 신하가 만나 진심으로 의기투합하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을 뜻한다. 이런 인연은 천년에 한번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왕은 몽골의 징기스칸이다. 몽골은 고려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를 정벌하면서 몽골족이 지나간 자리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사람들을 도륙할 정도로 잔인한 민족이었다. 이런 몽골인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잠재운 사람이 있다. 바로 거란족(요나라)인 야율초재(1190~1244)이다.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마지막으로 금나라(당시 금나라는 남송과 대치하고 있었음)를 정벌할 무렵, 인재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마침 금나라 지배를 받고 있던 요나라 야율초재를 알게 되었다. 징기스칸은 야율초재를 책사로 모셔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칸은 주위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 앞으로 야율초재를 내 곁에 두어 언제든지 자문을 구할 것이다.”

물론 야율초재도 징기스칸을 존경했다. 이 야율초재는 징기스칸과 함께하기 전에 유학에 뛰어난 학자로서 당시 유명한 승려였던 만송행수(1166~1246) 밑에서 오랫동안 참선했었다.

야율초재는 징기스칸에게 도교 도사를 초빙해 마음공부를 하게 했고, 살생의 부도덕성과 생명의 존중을 일깨워 줌으로서 칸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징기스칸은 죽기 한달 전 군신들에게 ‘정복을 해도 사람을 살생하지 말 것과 노략질하지 말라’는 포고를 내렸다. 또한 징기스칸이 죽기 전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야율초재는 하늘이 우리 가문에 준 인물이니 그의 뜻을 따라 국정을 행하도록 하라”

야율초재는 징기스칸의 후예 오고타이 시대까지 책사를 하였으니, 몽골인이 중원을 통일하고 원나라를 세우는데 기둥 역할 하였던 인물이다.

평범한 삶이 아닌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도 야율초재 같은 일깨움을 주는 벗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징기스칸과 야율초재같은 인연은 복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진지함만 있다면 자신을 알아주는 벗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정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