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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의 역사

수돗물의 역사

by 운영자 2012.09.27







윤한음
순천시 환경연구사

간혹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식조리부터 설거지, 세면, 화장실, 세탁 등 모든 일상생활이 마비되고 만다.

이처럼 우리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수도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며, 요즘처럼 대부분의 가정에까지 보급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이다.

수도가 없었을 때는 계곡물을 대나무나 나무홈통을 이용하여 운반 급수하였으나 대부분의 평지에서는 우물이나 강물을 길어다 사용했다. 또한 위생상태도 형편없었다.

1912년 발행된 ‘조선의 상수도’에 의하면 서울의 우물 9,214개소 중 12%인 1,091개만 음료에 적합했고 나머지는 부적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상수도시설은 1908년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특허를 받아 설치한 서울의 뚝도정수장이다.

근대 상수도시설이라 함은 자연 상태의 물을 취수→침전→여과→정수→송·배수 과정을 거쳐 가정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서울 뚝도정수장의 시설규모는 시설용량 일 12,500㎥으로 12만5천명에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외국의 상수도 역사는 로마의 상수도가 대표적이다. 로마는 BC312년부터 인공수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로마는 청정원수를 확보하기 위해 탁도, 색깔, 불순물 검사는 물론 수원지 역학조사까지 실시했다. 취수된 물은 침전지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수로를 통해 로마주변의 언덕에 설치된 저수조로 이송하여 저장하였다.

수로는 대부분 지하터널로 설치되었으며 수로 안쪽에는 방수를 위해 회반죽을 발랐다. 강과 계곡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돌과 벽돌, 시멘트 등을 사용해 교각을 만들어 수로를 연결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수돗물은 공동수조, 공중목욕탕, 개인가옥 등에 보급되었으며, 개인 수도에는 요금이 부과되어 현대 상수도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로마가 멸망한 후 수도는 침체기에 접어들어 이렇다할 발전을 이루지 못하다가 1800년대에 들어와 영국에서 물을 여과하는 근대식 위생시설이 도입되었다.

순천시 상수도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 옥천천에 보를 설치하고 1933년 옥천정수장을 건설하여 일 1,600㎥의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1949년 순천시청 건설과에 수도계가 신설되면서 수돗물 생산시설은 꾸준히 늘어났으며 1977년 옥천정수장을 일 7,000㎥까지 증설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옥천정수장이 유일하였으므로 수돗물 공급은 금곡동, 장천동, 조곡동 등 일부지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나, 1977년 12월 현대적 정수시설인 남정정수장이 일 10,000㎥규모로 준공되면서 수돗물 공급지역은 급격히 팽창되었다.

1994년 남정정수장을 일 92,000㎥규모로 확장하였으며 2004년에는 일 55,000㎥규모의 대룡정수장을 신설하였다. 이로써 순천시는 일 150,000㎥ 규모의 수돗물 생산시설을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 연향동을 비롯한 신도심지역은 대룡정수장에서, 남정동, 풍덕동 등 원도심지역은 남정정수장에서 공급하고 있다.

옥천정수장은 현재까지도 수돗물을 일부 생산하여 정수장으로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순천시 상수도 보급률은 91.1%이며 순천시민 각자가 하루에 사용하는 수돗물의 양은 346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