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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일

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일

by 운영자 2012.10.08

가을이 되니 이런저런 모임에서 연락이 많이 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도록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동창 모임에 모처럼 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살이 오른 몸에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고 흰머리는 이제 셀 수 없을 정도가 됐으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가 실감납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밀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쪽에서 왁자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둘러앉은 친구들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한 친구는 젊었을 때의 날카로운 인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날카로운 분위기가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옆의 친구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지만 행동이나 태도는 젊어서와 매한가지로 보입니다.

성격이 너무 물러서 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더니 오십이 넘은 지금도 누가 무슨 말만 하면 그저 허허 웃기만 합니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그 옆을 보니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쌀쌀맞고 예민해서 송곳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친구는 예전에 정말 사람들이 그런 별명으로 불렀나 싶게 푸근한 모습입니다.

사사건건 일일이 따지고 들면서 피곤하게 굴더니 지금은 수굿하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하게 웃어줍니다. 조금 전에 했던 생각과 달리 사람은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간해서는 잘 변하지 않지만, 또한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 감추고 있는 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40세가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오십 줄에 들어선 제 친구들의 얼굴이야말로 직접 써서 채운 삶의 기록장이기에 자기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얼굴은 몹시 쓰리고 고단한 일상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저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만들어낸 삶의 자국이기도 하니까요.

주름이야 막을 수 없지만 웃어서 생긴 주름과 시무룩하게 찡그려 버릇해서 잡힌 주름이 완전히 다른 게 그 증거입니다. 저는 웃는 얼굴 그대로 잡힌 주름은 밝은 햇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전해준다고 해서 ‘햇살 주름’이라고 부르고, 매사에 못마땅한 얼굴을 하다 보니 그렇게 굳어져버린 얼굴을 ‘심술보’라고 이름 붙여서 노인복지관 수업시간에 만나는 어르신들께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드리고 함께 웃는 연습을 하곤 합니다.

좋은 인상은 마음자리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연습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젊은 사람들처럼 예쁘고 멋있어 보이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이 들면서 점점 보기 좋아진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