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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지 않는 시간

거꾸로 가지 않는 시간

by 운영자 2012.10.22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 노래들은 참 쓸쓸하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귀뚜라미 소리, 낙엽 지는 소리, 바람소리… 가을에 들리는 소리는 모두가 쓸쓸하다. 가을이면 모두들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탄식한다.

나이를 계산해 본다. 시간이 거꾸로 갈 수는 없을까? 세월이 간다는 것은 늙어가고 그 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제 연말이 다가 올수록 거울을 보는 시간이 늘어 날 것이다. 그만큼 동안열풍도 거세 질 것이다.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회이든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젊음을 찬양하고 늙음을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쇠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노쇠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끼는 모순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비록 청춘들에겐 젊다는 것이 거추장스럽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탐나는 건 역시 젊음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젊음을 우상화하며 늙음을 우리의 삶으로부터 추방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그래 젊은 상태로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이러한 질문에 화답하고 있다. 영화는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숙고할 것을 요청한다. 만약 노인으로 태어나서 거꾸로 젊어지는 삶은 어떨까?

어린 몸으로 태어나 늙어져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점차 젊어지고 어려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어느 편이 더 행복할까? 답은 명쾌하다.

늙음을 한탄하며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탄식할 때가 많지만, 막상 시간이 거꾸로 흘러 점점 젊어지다가 죽는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젊어지려는 인간의 욕구보다 늙어가는 우주의 섭리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늙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섭리이기에 최고의 장수자도 최고의 동안 소유자도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 시간의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늙음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철학자 키케로는 저서 “노년에 관하여”에서 늙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농부들이 봄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 이상 죽음을 슬퍼할 이유는 없다.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늙고 죽는 것만큼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늙음은 삶의 과정에 내재된 것으로 쇠퇴를 자양분으로 삼은 성장과 성숙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거꾸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순리대로 흐르는 시간에 따라 늙어 가고 있는 자기를 스스로 고맙게 여겨야 한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낙엽처럼 생을 마감하고 쉴 수 있다는 건 인간을 위한 신의 배려이고 축복인지도 모른다. 결코 시간은 멈추지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순리대로 늙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우주의 섭리이며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주어진 인생을 여한 없이 살아내고 때가 되면 표표히 세상을 떠나는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삶의 미학을 본다.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