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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과 다양성

형형색색과 다양성

by 운영자 2012.11.08

갈잎나무들이 한 해 동안 만든 잎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는 계절이다.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나무들은 떨어진 잎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운할까, 아니면 안타까울까. 내년의 새로운 삶을 생각하면 반드시 잎을 떨어뜨려야할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안타깝지만 부득이하게 버려야할, 혹은 이별해야할 것이 있다.

버리고 이별하면 당장에는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런 아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생은 온통 아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 온통 아픔이기 때문에 아픔이 아니다.

갈잎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나뭇잎 때문에 형형색색의 세상이 펼쳐져서 아름답다. 내가 살고 있는 주위에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눈에 많이 띈다.

올해 은행나뭇과의 은행나뭇잎은 아주 노랗게 물들었다. 나무를 안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내가 황금 궁궐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목련과의 목백합의 잎도 노랗게 물든다. 가지가 마음껏 뻗은 목백합을 안고 바라보면 황금 궁궐이 은행나무보다 훨씬 웅장하다.

느릅나뭇과의 느릅나무도 누렇게 물든다. 누렇게 물든 느릅나무에는 열매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린다. 아주 얇고 가벼운 느릅나무의 열매는 중국 한나라 때 동전의 이름인 유협전을 낳았다.

느릅나뭇과의 느티나무 중에도 잎이 노랗게 물드는 것도 있다. 같은 과의 팽나무도 부모를 닮아 잎이 노랗게 물든다. 콩과의 나무들도 잎이 노랗게 물든다. 아마도 콩 잎이 노랗게 물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콩과 중 우리 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아까시나무과 회화나무다. 아까시나무와 회화나무와 달리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박태기나무도 잎이 노랗게 물든다. 박태기나무는 부모인 콩을 아주 많이 닮아서 잎이 거의 비슷하다. 잎이 노랗게 물드는 나무 중에 모과를 빼놓을 수 없다. 모과는 익은 열매도 노랗다.

사람도 물든 나뭇잎이 아름답듯이 각자의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답다. 나뭇잎은 각자의 처지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지든지 간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만이 아름답다.

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어떤 색깔을 드러낼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나의 색깔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서 우선 생각할 때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있다.

단풍나무의 단풍잎이 물든 잎을 대표하지만, 나무들은 각양각색, 형형색색의 색깔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나무의 물든 잎을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나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에 노랗게 물든 나뭇잎만 있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세상에 붉게 물든 나뭇잎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처참할까. 다양성은 모든 생명체의 특성이고, 인간이 그런 특성을 인정할 때 진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