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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여 줄 것인가

뭘 보여 줄 것인가

by 운영자 2012.12.14

적막이 드리운 산골짜기, 정적을 깨는 물소리 청아하다. 암봉 위로 집채만한 보름달이 솟는다. 거대한 석불 수십 개가 협곡에 떠오르고 스님은 바위에 앉아 묵언참선을 한다.

양치는 여인이 양떼를 몰고 무대에 오른다. 소림무술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발광(發光) 옷을 입은 무예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칼싸움을 벌인다.

중국 허난성(河南省) 해발 1400m 쑹산(崇山) 협곡을 무대로 펼쳐지는 ‘선종소림음악대전(禪宗少林音樂大典)’의 스펙터클한 공연이다. 암봉과 나무와 바위 등 자연 전체가 무대다. 물, 나무, 바람, 빛, 바위를 주제로 자연의 소리와 춤, 소림무예가 조화를 이룬 판타지다.

700여명의 출연진과 600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공연으로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다. 영화 ‘와호장룡’과 ‘영웅’의 음악감독으로 한국 펜들에게도 친숙한 탄둔이 총감독을 맡았다.

항저우(杭州) 서호를 무대로 물과 빛과 소리와 색이 어우러진 ‘인상서호(印象西湖)’ 또한 서호의 부가가치를 높인 대형 야외공연으로 환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출연진은 400여명.

보조출연진은 주로 지역 주민들이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밤에 공연에 참여한다.

중국은 지역의 역사성과 설화 등 특색을 살린 푸짐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려 관광객 수와 관광수입이 미국을 앞질렀다.

뉴욕과 라스베이거스, 파리와 런던은 한국인들이 뮤지컬과 연극, 화려한 쇼 관람을 염두에 두고 떠나는 여행목적지다. 스페인에 가면 투우와 플라멩코를 보고 포르투갈에서 애절한 ‘파두’를 들어야 여행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낀다.

요즘은 각 나라 지방도시마다 저녁식사를 곁들인 소규모 공연이 늘어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인도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을 둘러 본 뒤 관람하는 인도민속춤은 부조의 무희가 환생하여 압살라 춤사위를 펼치는 것 같아 생생하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친 뒤 카트만두 관광식당에서 만나는 민속춤은 셀파들의 애환을 담아 피부에 와 닿는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한국은 보여줄 만한 관광문화 콘텐츠가 미흡하다.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이나 ‘난타’, ‘점프’ ‘꽃의 전설’ 등 공연물은 서울에 몰려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와 경주는 물론 지방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볼만한 공연물이 드물다. 상시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이유라지만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경북 안동의 하회탈춤을 중심으로 세계의 탈춤을 축제기간에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전통탈춤과 현대탈춤을 아우르는 상설공연장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다.

전북 전주에서는 판소리를 접목한 창극을 공연하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설공연장과 외국어 자막처리시설, 숙박시설, 관련자료 전시실 등 문화기반시설의 확충과 함께 지역의 특색을 살려 전통문화를 접목한 공연문화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문화콘텐츠는 단순히 관광 상품을 넘어 우리나라를 알리는 문화의 힘이다.

이규섭 <시인ㆍ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