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에 담긴 지혜
동지팥죽에 담긴 지혜
by 운영자 2012.12.21
“올해는 팥 값이 비싸 동지팥죽도 못해 먹겠네” 동네 재래시장에 다녀온 아내의 푸념이다. “비싸면 안 해 먹으면 되지, 팥죽 못 먹어 죽은 귀신도 없는데…”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도 “얼마나 올랐는데?”물었다. “국산 팥 800g에 14만000원”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올랐는지 가격을 확인해보니 팥은 지난해보다 29%나 껑충 뛰었고, 새알심을 만드는 찹쌀은 4㎏에 1만6500원에서 1만9800원으로 20% 올랐다.
팥 파종 시기에 이상 고온으로 밭이 가물었고, 한창 자랄 시기에는 장마와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비싸도 겨울철 별미이니 조금이라고 끓여먹자”고 했다.
오늘(21일)이 동지(冬至). 음력 동짓달 초아흐레다.
12월 접어들자 폭설이 내리고 때 이른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려든 탓인지 구수한 팥죽이 생각난다.
동짓날이면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팥을 물에 담가놓은 뒤 이웃 고모님 마당 채에 있던 디딜방앗간에서 새알심을 만들 불린 찹쌀과 멥쌀을 섞어 빻았다.
적당히 반죽하여 새알심을 만드는 것은 누나의 몫이다.
그사이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을 삶아 채로 거른 뒤 주걱으로 저으면서 은근한 불에 서서히 끓였다. 팥죽이 걸쭉해지면 새알심을 넣는다.
정성껏 끓인 팥죽은 장독대에 올려 조상께 바쳤고, 아버지는 솔가지에 팥죽을 묻혀 대문과 벽에 뿌렸다.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해 가족의 무사안일을 빌었던 세시풍습이다.
동짓날은 ‘작은 설’이라 하여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겼고 나이대로 새알심을 먹기도 했다. 팥죽은 후루루 넘겨도 될 만큼 부드럽고 구수하며 새알심은 쫀득쫀득하게 혀끝을 감친다.
먹을 것과 주저부리가 귀하던 그 시절 팥죽은 출출함을 채워주던 간식이다. 눈 내리는 긴 겨울 밤 질화로에 팥죽을 데워 동치미를 곁들여 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예전엔 팥죽을 동짓날에나 먹었으나 요즘은 재래시장에 가면 호박죽과 함께 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됐다. 젊은이들은 달착지근한 단팥죽을 즐겨 먹고 팥빙수는 여름철 무더위를 가시게 하는 빙과류로 여전히 인기다.
동지팥죽에는 건강하게 겨울을 나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겼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져 양(陽)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이 음(陰)의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팥은 심장이 제대로 박동할 수 있도록 이뇨작용으로 수분을 빼주어 겨울철 활력을 북돋우는 약선(藥膳)식품이다. 실제로 팥은 열독을 다스리고 나쁜 피를 없애며 섬유질과 사포닌이 함유되어 장 기능을 개선하고 변비에도 도움을 주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한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지고 푸성귀에도 새 마음이 깃든다고 했다. 한겨울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푸성귀가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새움을 띄울 채비를 한다.
차가운 눈 속에서도 복수초는 노란꽃잎을 피우려 심호흡을 할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올곧은 성정으로 희망을 싹틔울 새 봄을 준비하자.
<이규섭 시인>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올랐는지 가격을 확인해보니 팥은 지난해보다 29%나 껑충 뛰었고, 새알심을 만드는 찹쌀은 4㎏에 1만6500원에서 1만9800원으로 20% 올랐다.
팥 파종 시기에 이상 고온으로 밭이 가물었고, 한창 자랄 시기에는 장마와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비싸도 겨울철 별미이니 조금이라고 끓여먹자”고 했다.
오늘(21일)이 동지(冬至). 음력 동짓달 초아흐레다.
12월 접어들자 폭설이 내리고 때 이른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려든 탓인지 구수한 팥죽이 생각난다.
동짓날이면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팥을 물에 담가놓은 뒤 이웃 고모님 마당 채에 있던 디딜방앗간에서 새알심을 만들 불린 찹쌀과 멥쌀을 섞어 빻았다.
적당히 반죽하여 새알심을 만드는 것은 누나의 몫이다.
그사이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을 삶아 채로 거른 뒤 주걱으로 저으면서 은근한 불에 서서히 끓였다. 팥죽이 걸쭉해지면 새알심을 넣는다.
정성껏 끓인 팥죽은 장독대에 올려 조상께 바쳤고, 아버지는 솔가지에 팥죽을 묻혀 대문과 벽에 뿌렸다.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해 가족의 무사안일을 빌었던 세시풍습이다.
동짓날은 ‘작은 설’이라 하여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겼고 나이대로 새알심을 먹기도 했다. 팥죽은 후루루 넘겨도 될 만큼 부드럽고 구수하며 새알심은 쫀득쫀득하게 혀끝을 감친다.
먹을 것과 주저부리가 귀하던 그 시절 팥죽은 출출함을 채워주던 간식이다. 눈 내리는 긴 겨울 밤 질화로에 팥죽을 데워 동치미를 곁들여 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예전엔 팥죽을 동짓날에나 먹었으나 요즘은 재래시장에 가면 호박죽과 함께 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됐다. 젊은이들은 달착지근한 단팥죽을 즐겨 먹고 팥빙수는 여름철 무더위를 가시게 하는 빙과류로 여전히 인기다.
동지팥죽에는 건강하게 겨울을 나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겼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져 양(陽)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이 음(陰)의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팥은 심장이 제대로 박동할 수 있도록 이뇨작용으로 수분을 빼주어 겨울철 활력을 북돋우는 약선(藥膳)식품이다. 실제로 팥은 열독을 다스리고 나쁜 피를 없애며 섬유질과 사포닌이 함유되어 장 기능을 개선하고 변비에도 도움을 주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한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지고 푸성귀에도 새 마음이 깃든다고 했다. 한겨울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푸성귀가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새움을 띄울 채비를 한다.
차가운 눈 속에서도 복수초는 노란꽃잎을 피우려 심호흡을 할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올곧은 성정으로 희망을 싹틔울 새 봄을 준비하자.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