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구들장논’ 보셨나요

‘구들장논’ 보셨나요

by 운영자 2013.02.01

밥투정을 하며 자란 세대가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알기나 할까? 쌀이 식탁에 오를 때까지 농민들이 88번의 힘든 노동을 거친 결실임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먹었을까?

가난한 시절 다랑이논과 천수답을 일궈 쌀농사를 지었다는 것을,쌀이 없으면 라면이나 피자를 먹으면 된다는 아이들이 알 턱이 없다. 청산도의 구들장논을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생뚱맞은 생각이 떠올랐다.

구들장논에 관심을 가진 건 20여 년 전. 졸저 ‘사라지는 풍물’(1993년/국민일보 발행)을 통해 기술한 바 있다.

전남 완도에서 뱃길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청산도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지만 비탈진 땅이 척박하고 자갈이 많아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둘 수 없었다.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착안한 것이 구들장 활용이다. 축대를 쌓은 뒤 마치 온돌방의 구들장을 놓듯이 깔고 그 위에 진흙으로 틈새를 메운 뒤 흙을 덮고 벼를 심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에게 쌀밥을 먹이려는 농사꾼의 노력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물을 대고 남은 물은 아래로 흘려가도록 배수통수로를 따로 설치한 구조에도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겼다.

구들장논은 온돌문화를 가진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논 구조로 청산도 이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 역사도 400년이 넘는다.

3년 전 청산도를 찾았더니 구들장논 원형이 많이 훼손 됐다. 산비탈 계단식 논이라 경지정리가 안 돼 기계를 사용할 수 없고 소득이 떨어져 주민들의 관심이 멀어진 탓이다.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니 힘들게 쌀농사를 짓기보다 양파와 마늘, 지역 특산물인 고사리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었다. 구들장논과 함께 취재했던 초분(草墳)도 대부분 사라지고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둘레 길 옆에 관광용으로 초분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청산도 구들장논과 함께 제주도의 ‘돌담밭’이 농업유산 2호로 지정됐다. 돌담밭은 13세기부터 검은 현무암으로 바람을 막아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돌담을 경계로 삼은 뒤부터 토지 침탈과 분쟁 등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돌담 길이만 2만㎞가 넘어 ‘흑룡만리’로 불린다. 정부는 3년 동안 국비 15억 원씩을 각각 지원하여 복원과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내친김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관리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 등재도 신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2002년부터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된 19곳 가운데 필리핀 바나우지역 다랑이논에는 연간 12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해발 1000m의 높이로 끝도 없이 이어진 산줄기가 모두 논이다. 2년 전 등재된 일본의 ‘이산리해(里山里海)’와 ‘따오기 공생농법’ 등은 훌륭한 관광코스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독특한 공법을 창안하여 만든 구들장논은 우리의 소중한 농업유산으로 보존가치가 크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토속적 경관을 관광과 연계하여 관광 상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